미용사가 롤로 머리칼을 만다. 롤 위에 펌 약을 바르고 에어볼을 씌운다. 에어볼은 마치 UFO처럼 가운데는 뻥 뚤린 은색의 둥근 판으로, 360도로 천천히 돈다. 흔히 아우라를 형상화시킬 때 볼 수 있는 그런 모양새다. 둥근 판에서 나오는 자외선과 열이 펌의 완성도를 높인다고 한다.
바닥엔 앞서 미용을 하러 왔던 사람들의 것이겠는, 커트했던 머리칼이 군데군데 깔려 있다.
늘 갖던 의문이 다시 떠오른다.
몸에 붙어 있을 때는 소중하던 머리칼이 머리에서 떨어지면 혐오가 되는 건 왤까.
몸에 붙어 있을 때는 소중하던 손톱, 발톱이 몸에서 분리되면 혐오가 되는 건 왤까.
그 외에도 많다. 인체의 일부였을 때는 ‘없어선 안 되는’ ‘없으면 탈이 난 증거가 되는’ 똥과 오줌, 방귀, 침, 귀지 따위가 몸 밖으로 나오는 순간 혐오가 되는 건 왤까.
조금 더 나아가보자.
머리칼과 똥오줌과 기타 등등이 있어야 생生이 되던 몸뚱이가, 어느 순간 멈추면 시신이라는 명칭으로 혐오가 되는 건 왤까. 그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 신발, 옷, 식기 등까지도 혐오가 되는 건 왤까.
자기자리를 이탈한 것들은, 즉 생명에서 제거된 것들은. 찌꺼기가 되어서 그런가?
약간의 예외는 있다.
전쟁에 나가는 사람이 머리칼과 손톱을 잘라 가족에게 보내는 행위 같은 것. 그 행위는 몸으로 대신하는 유서 혹은 유언의 일종이다. 어느 면에선 제의다. 현재는 생명을 잃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잃을 수도 있다는, 희망과 절망의 동시성이 존재한다. 해서, 혐오보다는 생과 사의 줄타기가 전면에 등장한다.
아닌 경우도 있다.
어린 연두로 돋아나 초록이 되다 노랗거나 붉은 색으로 땅에 떨어지는 낙엽의 경우. 나무에서 분리되어 생명을 잃었지만 낙엽을 찌꺼기라 보거나 혐오로 느끼는 사람은 없다. 왤까.
뱀의 허물은 혐오지만 낙엽은 슬픔이 섞인 아름다움이다. 이 극명한 차이는 왤까.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머리를 자르거나 손발톱을 자를 때마다 드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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