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이 작품은 너무나 유명해서 읽지 않았음에도 읽은 듯한 착각을 준다. 『춘향전』을 읽지 않았지만 읽었다는 착각을 주는 것과 흡사하다.
시간은 많이 흘러 지금은 2023년이다. 1770년대 젊은 베르테르의 사랑이 자본의 힘으로 사는 현대에도 통하리라는 생각은 버거운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화두는 인간의 기저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임엔 분명하다. 다만, 사랑을 어떤 식으로 행하느냐, 읽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서사는 널리 알려진 대로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사랑하다 자살했다는 얘기.
당대 이 책을 읽었던 젊은이들에겐 공감대가 컸으리라 짐작한다. 미완의 사랑이 마치 자신과 같아서 베르테르처럼 자살한 사람이 많았다던가. 해서,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던가.
이 소설은 섬세하고 예민한 청년 베르테르가 친구인 빌헬름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글이다.
베르테르는 빌헬름에게, 시골로 내려가 남들의 간섭과 충고를 받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무척 행복하다고 쓴다.
베르테르는 귀족 계급으로, 지금 머무는 고장의 서민층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가난한 아이들이나 사람들에게 약간의 돈을 준다거나, 동네 여자의 물동이를 들어 머리에 얹어준 일을 말한다. 그런데 독자 입장에선 어쩐지 진정성보다는 자랑을 늘어놓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거기다 다른 귀족층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은 휴머니스트라는 식으로 말한다. 요즘 말로 자랑질이다.
“약간 지위 높은 양반들은 서민들을 가까이하면 무슨 손해라도 입는다고 생각하는지, 언제나 쌀쌀한 태도로 그들을 대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가 하면 일부러 저자세를 취하면서, 도리어 자신의 거만함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층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경박한 무리들과 악질 패거리도 없지 않다. 나는 사람들이 평등하지 못하고, 평등해질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17~18쪽.
위의 발언에서, 선행을 한 자신은 천박한 귀족층과는 다르다는 걸 강조하지만, 그 강조가 오히려 서민층을 만만하게 보는 베르테르의 의식을 드러낸다. 계급의식이 팽배하던 그때나, 평등하다고 여기는 지금이나, 계급의식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한다. 베르테르 역시 계급의식이라는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위선적이다.
서사로 들어가 본다.
베르테르는 마차를 타고 모임에 가던 중 로테와 합석하게 된다. 같은 마차를 탄 여인들의 말에 의하면, 로테는 약혼자가 있어서 그녀에게 관심을 두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단숨에 로테에게 빠져든다. 로테가 어떤 여인이라는 묘사는 대단하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하다. 죽은 엄마를 대신해 여러 동생을 돌보는 헌신적인 여인이며,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며, 항상 명랑성을 잃지 않는 여인이며, 아프거나 곤란에 처한 사람에겐 즉시 달려가 도움을 주는 여인이다, 등등.
이정도면 성모 마리아 급이다. 단점이나 약점은 없는 완전무흠의 여자. 즉, 사랑에 빠진 남자의 눈엔 여자의 모든 게 진실하며 아름답다. 사랑의 전형성이다.
베르테르와는 달리 로테는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늘 정결하며 인간적인 따뜻함으로 무장하지만 베르테르를 은근히 연모하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베르테르가 열정적이며 때론 공격적으로 사랑을 표해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는다.
로테가 제도와 관습에 매인 반면, 베르테르의 사랑은 더욱더 끓어오른다. 로테가 사는 고장 근처에 가서는, 이 공기를 로테가 마시고 있을 거라며 그 공기마저 소중하게 여긴다. 로테에게 심부름을 다녀온 시종을 보면, 로테가 저 시종의 옷깃이며 어깨를 봤을 것이라 생각해, 그 시종의 옷깃이며 어깨를 보고 또 보며 더할 수 없이 좋아한다. 오죽하면 누군가 그 시종을 많은 돈으로 사고 싶다 해도 절대 주지 않겠다는 말까지 한다. 이 정도면 사랑이라기 보다 신격화하는 것이다.
신이란 무엇인가.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누구에게나 흠모를 받지만, 소유권은 주지 않는 게 신이다. 해서, 신은 영원히 추앙받는 존재로 남는다.
흠 하나 없는 로테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알베르트라는 남자와 결혼한다. 이 또한 성모 마리아를 재현한 이미지다.
베르테르는 로테가 결혼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만 사랑은 멈출 줄 모른다. 오히려 소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 결핍을 메우고자 하는 욕망으로 피폐해간다.
어느 시점에 이르자 베르테르는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끼고 자살을 결심한다. 주변을 정리하면서도 수시로 로테에게 편지를 쓴다. 다른 한편으론 로테의 집을 방문하고 또 집에 돌아오면 자살하겠다는 편지를 쓴다. 마치, 사랑은 이런 것이야, 구질구질해 보이겠지만 마음 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날 좀 잡아줘, 라고 신음을 토해내는 듯하다.
베르테르는 마음을 정한 후 시동을 불러 로테의 남편 알베르트에게 편지를 전하라고 한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하다. “여행을 하려고 하는데, 선생의 권총을 빌려주시겠습니까?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221쪽
시동은 알베르트에게 편지를 전하고, 알베르트는 짐짓 모른 체 로테에게 권총을 주라고 말한다. 로테는 베르테르가 죽기로 결심한 것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남편의 지시인지라, 권총의 먼지를 털고, 떨리는 손으로, 머뭇거리며 내어준다.
시동이 베르테르에게 권총을 전하자, 베르테르는 로테의 모습이 어땠는지 묻는다. 로테가 권총의 먼지를 털고 주었다고 하자, 베르테르는 로테가 만졌을 권총이라며 무척이나 기뻐한다. 베르테르는 로테가 준 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 사랑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사람(베르테르)이 신(로테)을 만들고, 그 신은 자신을 신으로 만든 사람을 아끼면서도 죽게 내버려 두는 것으로 봐야 할까. 무리가 따르는 설정이다. 그렇긴 하나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무엇하다.
이 소설은 사랑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사랑이란 끝없는 미완이며, 결핍이며, 열정의 노크가 아닐까. 근원을 두드리는 눈물이며, 혁명의 힘줄이며, 자신을 찾는 원소는 아닐까.
오, 베르테르에게 안식을.
'나의 소설 > 독서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비에서』 (0) | 2023.08.12 |
---|---|
『카메라 루시다』 (0) | 2023.06.28 |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0) | 2023.05.31 |
『댈러웨이 부인』 (0) | 2023.05.30 |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0) | 2023.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