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프루스트는 나으 숙제여라

유리벙커 2011. 7. 7. 17:04

다시 프루스트다.

프루스트는 내게 큰숙제다.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국일미디어에서 11권으로 나와 있다.

요즘엔 다른 출판사에서 새 번역으로 3권짜리가 나오긴 했지만

내가 2006년도에 구입할 당시만해도 그 책은 11권, 엄청난 분량이었다.

 

 

사실, 권 수가 무슨 상관일까.

2006년에 그 책을 샀을 땐 포부가 대단했다.

다 읽는 것으로 푸루스트를 통과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철석같이.

그러나 그것은 꿈, 그저 꿈이 되고 말았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만 질려버렸다.

단락도 별로 떼지 않고 대사도 없는, 그야말로 전쟁 같은 책이었다.

긴 문장, 내러티브도 자극적이지 않은, 그저 그런 일상을 지루하게 풀어놓은 소설에 불과했다.

그런데 왜 이 책이 그다지 지금까지 명서/고전으로 회자되고 연구되는 것일까.

의문은 여전했지만 딱히 알아낸 것도 없이 책을 덮었다.

아마 3권까지 읽었지 싶다.

그러다 지금 2011년 새삼 또 프루스트를 잡았다.

늘 풀지 않은, 풀 수 없는 퀴즈처럼 그렇게 알게모르게 내게 들러붙었던 프루스트.

그런 미진함을 가진 채 나는 철학아카데미에서 김진영 선생님이 프루스트를 강의한다는 걸 알고 이때다 싶어 얼른 등록했다.

강의는 순조롭고 좋았다.

프루스트를 조금씩 벗겨나가는 그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나는 강의를 열심히 기록하고 페이퍼를 읽었다.

김진영 선생님은 기존에 알려진 프루스트를 다른 방향/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그 시도도 참신하고 내겐 더없는 재해석이라 글 쓰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 선생님이 한 말이 생각난다.

"독서는 가장 은밀한 사적인 것 입니다. 예술적 사랑은 사적인 것이며, 나와 작품 사이에서 둘만이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독서에 관한 이 말이 내게 징을 울린다.

제대로 된 독서 없이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은 분명, 과욕이다.

한때 나는 거의 학대수준으로 책을 읽었지만 지금은 글에 매여 독서에 내 줄 시간이 부족하다.

아니 인색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이라는, 내겐 달려갈 길이 있으므로 달려가고 또 달려가기에 급급한 것이다.

나쁜 습관이다.

숨을 고르고, 프루스트, 그 인내의 길에 눈을 돌린다.

그가 11년 동안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코르크로 만든 방에 틀어박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했던 그 인고의 시간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부르주아인 셈이다.

 

1권을 펼치니 프루스트가 한 말에 밑줄 친 게 보인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이란 남들의 생각이 만들어 낸다. ......

(중략)

 우리가 보고 듣고 있는 것은, 실은 이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프루스트에게 빚을 진 느낌이 나쁘지 않다.

나를 키우는 양분이 바로 그러한 빚이라는 걸,

나는 좋은 추억처럼 내리는 이 오후의 빗줄기에 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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