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꽃은 성기

유리벙커 2011. 7. 5. 17:41

제목이 야하다.

그런데 그 말은 맞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꽃은 성기다.

꽃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한 색과 모양으로, 벌레를 유혹한다.

벌레에게 자신의 꽃가루를 묻혀 다른 데다 묻히거나 뿌리는 걸로 종족을 번식시킨다.

꽃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벌레만도 못하다.

종족 번식에 별다른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꺾어대기나 하니 안 그런가? 

예쁘다는 말로, 어디 행사장이나 테이블에다 장식만 해놓는다고 종족 번식이 가능한 건 아니다.

꽃은 이미 그러한 이치를 알아 벌레를 사모했던 모양이다.

 

(서울 근교 고당이라는 찻집 마당에서 본 나리꽃과 나비, 꽃과 나비 입장에선 분주할 터이지만 보는 이에겐 그저 한가롭고 예쁘다)

 

 

 

베란다에 있는 관음죽이 꽃을 열었다.

저 꽃은 사실 꽃이라 부르기 민망하다.

너무 노골적이며 징그럽다.

꽃이라기 보다 물 속에서 흐믈대는 어떤 생물의 손가락 같기도 하고 가는 다리 같기도 하다.

더구나 옅은 분홍빛이 감도는 색은 살인가 아닌가 싶다.   

꽃은 예뻐야 한다는, 인간이 만든 인식의 법칙을 위반한다.     

그러니 저 꽃은 대단히 당차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뻔뻔하기조차 한.

뻔뻔한 건 이것이다.

관음죽에 꽃이 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모양은 별로지만, 그래 그랬는지, 관음죽의 꽃은 富를 준다는 말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나도 저 꽃을 보는 순간 징그러움과 행운이 동시에 떠올랐다.

얼마나 이기적인가.

꽃은 생명을 다해 분투할 뿐인데 사람들은 그저 사람들 입장에서 말한다.

저 꽃은 쉽게 피는 게 아니라는 둥, 꽃이 핀 걸 보니 취업이 될 거라는 둥,

관음죽을 집에 놓으며 좋은 일이 생긴다는 둥.

뭐 나쁘게 생각하는 것보다야 좋은 일이지만

때론 꽃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꽃은 인간을 위해 피는 게 아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꽃을 미화시킬 뿐이다.

너무 삭막한가?

 

 

예전에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데 구매자에게 작은 잎이 달린 꽃 화분을 주는 행사가 있었다.

내게 그 화분을 주던 여직원의 말이 생각난다.

"난 식물이 무서워요."

그러니까 그 말은, 멀쩡히 산 것을 관리 못 해 죽이는 게 무섭다는 말이었다.

나 역시 그렇다.

보는 건 좋아하는데 가꾸는 것은 영 젬병이다.

봄이 되면 일년초를 사다 심어도 보고, 선인장을 사다 놓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 뿐, 시들해지나 싶으면 시름시름하다 일 년을 못 넘긴다.

영양제도 주고 물도 주고 햇빛을 쬐어주어도 허사다.

우리 집에서 명이 긴 식물은 저 관음죽 뿐이다.

이미 자란 것을 얻어다 놓은 것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저 녀석의 줄기찬 생명력 때문일 것이다.

저 꽃만 봐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사방으로 뻗은 가지 같은 잎인지 줄기인지 모를 꽃은 징그럽다 못해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생존을 말이 아닌, 고운 자태가 아닌, 질긴 몸으로 보여준다.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는 것에 빗대어 식물도 수컷과 암컷으로 나눈다면,

나는 저 관음죽을 수컷 그룹에 넣겠다.

꽃이 너무 저돌적이지 않은가? 

아무튼 오늘  저 꽃을 보니 꽃은 성기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몇 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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