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발표한 글

질투 공부방

유리벙커 2011. 7. 10. 16:27

   질투를 아시나요?

 

칠거지악의 하나라고요? 예스,딩동댕. 오, 노~ 띠링.

 

요즘 세상에 질투를 칠거지악의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피살의 위험을 안주머니 깊숙이, 지갑보다 더 깊숙이 넣고 다녀야 할지

 

도 모릅니다. 질투 같은 건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분, 질투만 받았다고 여기는 분, 이런 분들은 질투, 그 요상한 불길을 다시 탐험해보았으면 합니다.    

 

질투란 오른팔과 왼팔입니다. 오른팔만 쓰는 사람 없고, 왼팔만 쓰는 사람 없듯, 질투는 하기만 하는 것도, 받기만 하는 것도

 

아니랍니다. 질투 때문에 운 적이 있다고요? 잠 못 자고 날밤을 샌 적도 있다고요? 잘 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일수록 질투와

 

싸움도 하고 사귀기도 한답니다. 

 

노벨상을 탄 오르한 파묵은 <<내 이름은 빨강>>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로 불행한 일은 늙어서 추해지고 남편이 없거나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나를 질투하지 않는 것” 이라고요.

 

자, 이쯤 되면 질투가 얼마나 소중하고 재미있는 것인지 알 것 같지 않나요? 느닷없이 웬 질투 타령이냐고요? 질투가 예뻐섭니

 

다. 혼자 보거나, 혼자 먹거나, 혼자 느끼기엔 아까운 것들이 있듯, 지금이 바로 그때랍니다. 약간의 사설을 시작으로 제가 만

 

난 질투를 공개합니다.    



   친구와 지하철을 탔다. 좌석은 계란판에 놓인 삼십 개의 계란처럼 빈 자리 하나 없이 다 찼는데 서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럴 때만큼 어느 쪽으로 가 서 있어야할지 고민스러울 때도 드물다. 뭐 모델이라면 옳지 잘 됐구나 하고 사뿐사

 

뿐 통로 한가운데로 가 서 있겠건만, 나와 친구는 모델도 아가씨도 아닌 아줌마였다. 양쪽 좌석에 꽉 차 앉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걸 생각하면 지레 움츠러들고, 그렇다고 출입문 쪽에 서 있자니 그것도 좀 그랬다. 그때 친구가 내 팔을 탁

 

끼더니, 경로석으로 잡아끌었다. 마침 경로석은 비어있었다. 친구와 나는 경로석에 앉아 수다 더하기 에다 곱하기를 했다. 수다

 

에 있어 나누기나 빼기가 없다는 공식을 입증이라도 하듯, 우리는 수다에 전념하느라 어디까지 왔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 역엔가 도착하자 문득 밖을 내다봤다. 창동역. "어머, 너 내리는 데 아니니?" 내 말에 친구는 깜짝 놀라 용수철 튕기듯 내렸다. 그때 어느 새 와 앉았는지 모를 할머니가 말을 붙였다. "얘기도 참 재밌게 하네유." 그 말을 들으니 좀 민망스러

 

. "예에~" 하곤 말을 마치려는데 느닷없이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 저 할머니한테 세상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거야. 사

 

실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할머니는 뭔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무슨 말일까.... 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어디까지 가세

 

요?" "의정부역이유." "예에~ 종점까지 가시는군요. 거기 사시나봐요." "아뉴, 개봉동에 살아유."

 

다 저녁 때 할머니 혼자 개봉동에서 의정부역이라니,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또 물었다. "무

 

슨 급한 볼 일이라도 있나보죠?" "아뉴, 친구 만나러 가는 길이유."

 

   할머니는 나를 말동무로 여겼는지 그때부터 스스럼없이 말을 풀어나갔다. "실은 인사동서 놀다 가는 길이유." 인사동? 인사동이

 

어디 할머니가 노실 동넨가? 나는 인사동에서 뭘 하고 노셨냐고 물었다. 탁구를 치며 노셨다고 했다. 엥? 할머니가 탁구를? 할

 

머니는 수수한 차림의 보통 할머니로 첨단표로도 열심표로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남편 되시는 할아버지와 함께 치다 먼저 나

 

와 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할아버지 얘기가 나오면서부터 할머니는 생생해지고 쌩쌩해졌다.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톡톡 치며 말했다.

 

"어휴, 그 냥반, 요기 요기에 작은 점 하나만 보여두 빼려구 난리유. 거울도 을매나 많이 본다구유." 할아버지의 연세는 일흔여덟

 

이라고 했다. 일흔여덟의 할아버지와 일흔셋의 할머니가 탁구 치는 모습이 보기 좋은 그림으로 떠올랐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

 

다. "할아버지 혼자 두고 할머니만 친구 만나러 가세요?" 할머니가 펄쩍 뛰었다. "그 냥반 말유, 나랑 탁구 다 치구 당구 치러

 

갔슈." 이건 또 뭔 소리인가. 일흔여덟의 할아버지가 당구라니.

 

   할머니는 부연설명을 하듯 말했다. 할아버지는 탁구 치는 여자 따로, 당구 치는 여자 따로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게 너무

 

꼴 보기 싫어 자신도 탁구를 배워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같이 치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탁구를 다 치

 

 

면 다른 여자랑 당구를 치러 간다고 했다. 그게 너무 화가 나 1호선을 타고 무작정 종점까지 가는 중이라고 했다. "나두 샘이 나

 

는규. 이대루 가만있을 수 읎어 탁구까지 배웠는디.... 나두 당구 배워 같이 치겠다구 했더니 그 냥반이 못 허게 해유. 말두 마

 

유, 집에 있을 땐 워찌나 이메일만 해대쌌는지, 아 사방에 그 여자 이름이 널렸다니께유. 그 요맨한 종이에 이메일이 써 있는

 

디 여기두 그 여자 이름, 저기두 그 여자 이름, 사방 천지에 그 여자 이름 뿐이라니께유."

 

   나는 할머니가 이메일이라는 용어를 안다는 것에 놀랐고, 할아버지가 이메일로 연애를 한다는 것에도 또 놀랐다. 할머니가

 

자신의 가슴을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나두 사랑받구 싶은규! 나두 증말 사랑 받구 싶은규!"

 

 아, 고놈의 사랑. 약도 없다는 고놈의 사랑이 뭐기에 젊은 청춘 다 말아먹은 걸로 부족해 칠순을 넘긴 노인한테까지 약을 빡빡

 

올릴까.

 

 

   질투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질투를 칠거지악으로 내몬 사람은 사랑을 몰라도 한참이나 모른다. 심하게

 

말하면 죽은 사람으로 살라는 말인데, 질투야말로 살아있다는 증표이자 특권이 아니겠는가. 페미니즘으로 말하지 말자. 그 연

 

세에 질투 때문에 탁구도 배우고 당구나 이메일까지 넘나드는 할머니에게 무슨 까탈 떨 일 있다고 페미니즘 이론을 들먹인담.

 

   아쉽게도 내가 내릴 역이 왔다. 나는 주먹을 쥐고 할머니에게 파이팅! 하고 작지만 힘 있게 말했다. 놀랍게도 할머니 역시

 

나와 똑같은 제스처로 파이팅! 하고 답했다.

 

   할머니와 헤어져 오는데 여러 생각이 났다. 내 나이 일흔 셋이 되면, 그때까지 산다면, 그때에도 나는 질투하고 질투 받는,

 

그런 열기를 갖고 있을까. 나이 값을 한답시고 의젓한 척, 세상을 달관한 척, 질투 같은 건 애들이나 하는 것이며, 늙은이한테

 

는 천한 것 정도로 몰아붙이진 않을까..... 장담할 수 없다.

 

   내 나이 오래 되면, 그때까지 묵으면,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화상전화도 구닥다리가 되고, 이메일로 연애하는

 

짓도 고전소설의 하나쯤이 될 수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첨단으로 치장한다 해도, 질투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

 

이 없었다면 첨단이라는 이름을 단 모든 것들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한 거기서 거기, 그것이 그것이라는 낙인을 달고 시시

 

하게 늘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은 우리가 그럴 것임을 너무 잘 알기에, 질투라는 아주 희한하고도 귀한 선물을 주신 모양이

 

다. 잘 써먹어라, 그러면 남부럽지 않은 에센스의 질로 살 수 있을 것이니. 신의 음성이 은은한 종소리로 내 귓전에 퍼진다.   □

<공감>에 수록   

'나의 소설 > 발표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편소설 <<환>> 보도자료  (0) 2012.06.27
닉스에게 로그인  (0) 2012.06.05
그녀의 이름은  (0) 2011.06.07
이사, 하기  (0) 2011.06.07
두 개의 자화상  (0) 2011.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