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갑자기 데스크탑 파워가 말을 듣지 않는 거다.
삼보컴퓨터AS센터에다 AS를 신청했다.
기사가 와서 하는 말이, 여기서 테스트를 하면 자료가 날아갈 수 있으니 센터로 가져가서 하겠다고 한다.
기사는 내 데스크탑을 떼어갔고, 하루가 지나자 서비스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CPU에 쇼트가 났고, 하드에도 이상이 있으니 교체하라고 한다.
CPU는 5만 원, 하드는 15만 원.
헌데 이상한 것은, CPU에 쇼트가 났다면 불꽃이 났어야 하는데 그에 따른 이상 징후는 없었다.
나는 파워 버튼만 손을 보면 될 듯했지만 수거까지 한 상태라 CPU만 교체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서비스센터 수리기사는 CPU만 교체하는 건 안 되고, 하드까지 해야 고쳐주겠다고 한다.
그때부터 말로 다 할 수 없는 언쟁이 시작됐다.
수리기사는 CPU와 하드를 고치지 않을 거면 퀵비 내고 퀵으로 받으라고 했고, 나는 수거해 간 기사가 도로 가져다 놔야 맞는 게 아니냐고 했다.
이때, 수리기사는 이미 고쳤으니 비용 지불을 하라고 하고, 나는 내 결재가 없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맞섰다. 내가 결재 운운하니까 수리기사는 금세 “언제 수리했다고 그랬냐, 수리 중이라고 했다”면서 말을 바꿨다. 나는 화가 나서 “삼보서비스센터는 이런 식으로 AS를 하냐”고 했고, 수리기사는 “삼보는 원래 이럽니다.~~~ 퀵비 내고 받으시던가 마시던가~~~고소를 하시던가 마시던가~~~”계속 비아냥 조로 말했다.
결론을 내지 못한 채 통화를 끊고, 나는 직접 수거하려고 주소를 검색해서 갔다.
헐~~ 주소에 나온 삼보AS센터는 건물 그 어디에도 없었다.
주변 상인들에게, 부동산에게 물어봤지만, 몇 년 동안 그런 사무실이나 센터는 본 적이 없단다.
아, 내 컴터....!!!! 그 안에 든 소설이며 정보며 사진 등등이 눈에 어른댔다.
다음 날, 할 수 없이 다시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서비스센터에 나온 070번호나 수거해간 기사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
전화기에서 흘러나온 멘트는 이랬다.
“요청하신 분의 사정에 의해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내 번호를 차단시켰다는 의심이 들었다.
해서, 언쟁을 한 수리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퀵비를 낼 테니 보내달라고 했다.
수리기사는 알았다고, 곧 퀵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퀵은 하루가 지나도록 오지 않았고, 다음 날 나는 다시 퀵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수리기사는 언쟁을 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아주 상냥하고 신뢰감 팍팍 나는 음성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도록 퀵은 오지 않았다.
수리기사의 속셈이 뭔지 감이 왔다.
어디 속 좀 타봐라, 내가 요구한대로 하지 않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실컷 맛 좀 봐라.... 뭐 이런.
그 후, 나는 계속 070과 수거기사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는다는 메시지만 나왔다.
할 수 없이 아들에게 연락했다. 내 전화를 받지 않으니 니가 해봐라, 하고 수리기사의 전번과 수거기사의 전번을 주었다. 수리기사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나한테 했던 말을 그대로, 곧 퀵으로 보내겠다고 했지만 다음 날까지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아들이 수거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거기사는 내 전번이 아니라 그런지 아들의 전화를 받고 퀵으로 보냈다.
아들은 퀵으로 받은 데스크탑을 들고 수리점엘 갔다.
수리점에선 CPU는 멀쩡하고, 하드는 누가 손을 댔는지 하드 옆에 있는 파티션을 뜯은 흔적이 보인다고 했다.
복구비가 30만 원이라고 했지만 소설 때문에 하드를 복구할까 갈등이 났다.
아들의 의견은 달랐다. 복구를 해도 엄마 하드가 아닌 다른 하드를 끼워놨을 경우, 다른 정보가 뜰 것이고, 복구비만 날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단 소설은 USB에 저장을 해뒀다니, 하드 복구는 포기하고 노트북을 사는 게 어떠냐고 했다.
사실 그동안 썼던 소설은 USB에 저장을 해뒀다. 하지만 새로 쓰기 시작한 소설 3편과 몇몇 정보는 바탕화면에 저장해둔 터였다. 당연히 USB에는 담아 있지 않다.새로 쓴 소설을 포기하는 수밖엔 방법이 없다.
(그 후 뒤늦게 삼보컴퓨터AS에 관한 포털사이트를 검색해봤다. 내 경우와 거의 일치하는 경험자가 많았다. 마치 AS가 본업이 아니라 새로 부품을 구입하라는 것, 새 컴터로 구입하라는 게 본업이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피해자들이 겪은 것을 키워드로 정리하면 이렇다. 중고 부품으로 AS, 데스크탑 수거, 전화 기피, 변명, 약올리기. 나로선 그나마 하드디스크를 손보지 않고 복구도 안 했으니 망정이지, 그랬다면 비용은 비용대로 날리고 속은 속대로 끓일 뻔했다.)
결론을 그렇게 내리고 나니 이런저런 회의가 왔다.
세상은 이토록 야비하고 사악한데, 소설은 그런 현실을 도무지 담아낼 능력이 없구나! 생존의 문제(컴터 수리기사의 언행)는 그리도 절박하고 천박한데 소설,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우울하고 맥빠졌다.
자본의 가치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을진대, 그래 그렇겠지만, 자본은 사람의 형질마저 변형시킨다. 돈 20만 원을 받자고, 해서는 안 될 일을 서슴없이 하는 자본의 하수인들. 안타깝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현실이 이러니 현실에 굴복해야 한다는 것 또한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내 소설이, 이러한 현실을 담아낼 수 없다 해도, 나는 계속해서 쓸 것이다. 왜냐하면, 이 또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손 댈 수 없는 현실도 현실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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