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공복에 마시는 커피는 하루 중 제일 맛있는 커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안다.
오늘도 눈을 뜨자 커피 머신부터 찾는다. 물탱크에 생수를 붓고 파드 홀더에 커피를 담아 꾹꾹 누른다. 그러고 보니 원두 가루가 딱 두 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한 봉지만 남아도 주문을 하는데 이리저리 바쁘다 보니 주문해야지 하면서도 미뤘던 터다.
커피를 뽑으며 늘 주문하던 곳에다 문자를 넣는다. 문자를 받은 바리스타이자 카페 사장은 놀란 듯이 답을 보내온다. 당장 먹을 커피가 없으면 어쩌냐고, 나보다 더 걱정을 한다. 커피를 즐겨 먹는 사람이 하루라도 커피를 굶으면 너무나 힘들다는 걸 잘 알고 하는 말이다.
사장은 얼른 보내겠다며, 추석 연휴가 끼어 있어 오전에 보내야 내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이번 커피는 어떤 게 좋은지 추천해 달라고 한다. 사장은 세 종류를 추천한다. 나는 그 중 어떤 게 좋은지 묻는다. 사장은 세 종류를 각각 포장해서 보낼 테니 그렇게 드셔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한다.
주문을 끝내고 오후가 되었을 때 문자가 온다. 커피 배달왔습니다~라는 문자. 곧이어 전화. 커피를 직접 가져왔으며 집 앞이라고 한다. 와, 놀래라.
그러니까 낼모레가 추석 연휴라 택배로 보내도 받지 못할 것 같아 직접 가져온 듯하다.
벨이 울리자 문을 연다. 키 크고 튼튼해 보이는 젊은 남자. 그동안 문자로만 주문을 했지 얼굴을 보긴 처음이다. 나는 그 먼 데서(구로동)여기까지 일부러 가져오셨냐고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사장은, 친구가 이곳에 살아 친구도 볼 겸 겸사겸사 왔다고 한다. 말이 그렇지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장은 카페도 있고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국숫집도 운영한다. 커피 세 봉지를 전해주러 올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그럼에도 겸사겸사 왔다는 말로 고객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 한다. 마음이 참 예쁘다.
포장을 풀고 보니 원두 가루 세 봉지와 직접 구운 파운드케잌이 두 개나 들어있다. 이것은 단순 고객 관리 차원이 아니다. 달마다 커피를 주문하는 것도 아니요, 원두 가격이 센 것도 아니다. 마음이 아니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흔히 “마음을 먹는다”라고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라는 말도 한다.
마음이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오죽 어려우면 “먹는다”라고까지 할까. 먹으면 소화가 되고, 소화가 되면 똥이 된다. 즉, 마음이란 소화가 되고 똥이 될 때까지 갈고 닦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득도란 거창한 게 아니라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방법/힘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추석 연휴가 코앞이었다. 도로는 엄청나게 막혔을 것이다. (그 즈음 나는 운전을 하며 차가 막혀 무척이나 고생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먼 길을, 커피를 먹지 못해 불편해 할 고객을 생각해 운전을 하고 왔다는 사실이, 감동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왔다.
누구든,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픈 마음은 있다. 헌데 그 감동이라는 것은 말보다 몸을 요구한다. 말 몇 마디가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자신을 상대에게 주는 일이다. 몸이야말로 직접화법이다. 보통의 열정으로는 하기 어렵다. 그런 열정을 존경한다. 그런 열정을 지지한다. 그런 열정이 그 사람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리라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열정과 감동은 그 어떤 건강보다 건강하다. 열정과 감동을 배우게 한 커피스퀘어 사장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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