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말고, 여행을 가자!
우리는 왜 그리 사무치도록 여행을 꿈꾸나.
여행 중에도 여행을 꿈꿀 수 있나, 질문해본다.
관광이 아닌 여행은 노마드(nomad)다.
규범을 떠난 해체와 재조립.
그 엄청난!!!(진짜 엄청나다) 저지름은 모두가 꿈꾸나 꿈꾸는 대로 하지 못한다.
어느 누가 어렵사리 잡은 직장과 터전과 오랜 세월 맺은 여러 관계를 툭 던질 수 있을까.
몸과 마음 혹은 정신의 이동은 세계관과 가치관의 변화를 뜻한다.
그러니 돈을 벌고 존재감을 유지하며 먹고 살아가자면 여행이 아닌 관광을 택할 수밖에 없다.
관광을 하면서도 굳이 ‘여행’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노마드가 되고 싶어서일 테다.
나 역시 ‘여행’이라고 칭하며 4박5일 같은 3박4일을 다녀왔다.
집에서 전라도 끄트머리까지 가는 길은 여러 달이 걸렸다.
그만큼 마음만 먹었지 실행에 옮기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우선은 길이 멀었다. 잠자리가 바뀌고 먼 길을 가기엔 체력이 달리기도 했다.
여러 달 머뭇대며 체력을 체크했고 날짜를 살피고 마음을 굳혔다.
이제 전남 여행 카운트다운!
첫날은 전남 화순의 운주사를 시작으로 적벽을 투어했고, 다음 날엔 해남의 대흥사와 도솔암을, 그 다음 날엔 완도와 목포를, 그 다음 날엔 고창 선운사를 거쳐 군산에 도착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단연 화순의 운주사다.
운주사로 가기 전, 사진으로 본 와불은 나를 매혹시켰다.
와불은 불자와 비불자를 떠난,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었다.
운주사로 들어가자 기존의 사찰에선 볼 수 없던 광경이 즐비했다.
여러 석탑과 석불이 관광객과 너무나 가까이에 있어서 놀랐다.
다시 말해, 석탑과 석불은 사람과 격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만지고 볼 수 있게 야외에 그대로 있었다.
우리의 생각은 그랬다. 소중한 것은 유리 상자나 철제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그 생각이 보기 좋게 무너졌다.
무너진 건 또 있었다.
진입로 양 옆에 있는 석탑들은 참으로 특이했다.
석탑의 모양도 공갈빵처럼 둥근 모양도 있었고, 무늬도 보통 연꽃이나 부처를 새겨 넣은 게 아니라, 사선이거나 엑스 자 형으로 그어져 있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모더니즘은 근대가 아닌 그 시대(연구자들도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의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고려 때쯤으로 추측하고 있다)에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시대 석공들의 미학적 수준은 탁월했다.
석탑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마주쳤다. 화가는 캔버스를 펼쳐놓고 석불을 그리고 있었다. 석공들이 돌을 이용해 부처를 새기고 탑을 올리는 것과, 캔버스에 부처를 그리는 것은 다른 질료를 사용한 같은 작업일 터였다. 화가는 아마도 석공들의 그 마음가짐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야외엔 석불도 많았다. 아버지 석불, 엄마 석불, 아들 석불, 딸 석불로 보이는 석불 앞에서 나는 멍해졌다. 어느 한 존재를 부처로 모시는 게 아니라 사람이 부처라는 의미로 보였다. 나만한 크기의 딸 석불에 팔을 둘렀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억겁의 세월을 뛰어넘는 그 무엇, 피부색과 국적과 이념을 뛰어넘는, 같은 크기와 무게의 그 무엇이 아닌가 싶었다.
운주사 대웅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운주사의 규모는 작았지만, 석불과 석탑은 산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빙 둘러싸인 산 이곳저곳을 다니며 석불과 석탑을 찾는 재미는 꽤 별달랐다. 석불과 석탑은 세월을 먹어 뭉개진 것도 많았지만 그 ‘소박한 우아함’은 외국의 어느 문화재보다 뛰어났다. 원대한 가르침, 침묵, 수행, 그러한 것들이 요란하게 드러나는 게 아니라 숨은 듯이 배어있었다. 나는 환호하며 숙연해졌다. 이렇게 커다란 돌을 들고 날랐을 몸들, 다듬었을 손길들, 그때의 신앙심들. 종교는 어느 한 존재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보통의 육체가 기리고 기리는 마음이라는 웅변을 들었다.
나는 내가 한 질문에 답한다.
여행 중에도 여행을 꿈꿀 수 있나, 있다.
그것은 ‘나’가 끝나지 않았으므로, 지금의 ‘나’가 아닌 ‘나’를 바라기에, 노마드는 죽을 수도 죽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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