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도서관에 간 적이 있다. 신간코너를 보던 중 이 책을 발견했다. 첫 페이지를 열고 몇 자를 읽는데, 이건 도서관에서 읽기보다 소장하며 두고두고 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미주와 참고문헌을 빼고도 547쪽이나 된다. 그림을 곁들인 것으로, 단순히 색에 관한 해설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인문학 저서다. 우리가 검은색을 어떻게 보는지, 그림이나 조각, 문학과 철학으로 드러나는 검은색은 어떤 건지, 검은색이 인류에게 끼친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영향은 어떤 건지, 검은색의 시원은 어디에 있는지, 검은색에 품는 부정과 긍정의 시각은 어디서 비롯됐는지, 등등을 다룬다. 저자(존 하비)가 펼치는 이론을 읽다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검은색의 다양성에 눈을 뜨게 된다.
우리가 블랙에 품는 선입견은 우선은 부정적이다. 죽음, 악, 질병, 우울을 나타낼 때 우리는 흔히 검다, 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섹시하다는 느낌 또한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느낀 바가 그렇다는 것일 테다. 검은 상복을 입은 여인에게서 고결함을 느낀다거나,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에게서 섹시함을 느끼는 따위 등등.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검은색은 색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앙리 마티스는 “검은 색은 힘”이라고도 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색의 여왕”이라고 했고, 이탈리아의 화가 틴토레토는 “색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검은색”이라고도 했다. -7쪽.
“검은색이 색깔 체계에서 어디에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질문이다. 검은색은 색깔 스펙트럼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색깔 스펙트럼은 근본적으로 빛의 파장에 따라 분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검은색은 어떤 물질로 가득 찬 상태일까? 빈 공간일까? 검은색은 하나의 색일까? 아니면 빛이 존재하지 않는 어둠에 불과한 것일까? (중략) 베토벤은 음악에서 C단조를 ‘블랙코드’라고 부르기도 했다. (중략) 검은색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검은색의 역사는 침략의 역사와 비슷하다. (중략) 금은색의 역사는 인간의 공포를 조금씩 점령해 나간 역사라 할 수 있다.” -9쪽.
“빨간 불빛, 하얀 불빛은 있어도 검은 불빛은 없다”-10쪽.
“문제는 우리의 시각이 빛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망막을 때리는 광자가 없으면, 눈은 어떠한 신호도 보낼 수 없다.”-11쪽.
저자는 우리가 말하는 그러한 색들을 ‘색채어’라고 말한다. “색채어는 색깔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색깔에 붙인 이름표에 불과하다.” -19쪽. “색깔은 인간이 붙이는 색채어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새들은 대개 인간보다 색깔인지능력이 뛰어나 자외선 영역에 속하는 색깔까지 식별한다. 우리에게는 칙칙한 잿빛처럼 보이는 깃털도 새들의 눈에는 눈부신 원색으로 보일 수 있다.”-17쪽
저자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해 열 챕터까지 간다.
태초에 있던 어둠은 무엇인지, 검은색이 죽음과 공포의 색이 된 것은 어째서인지, 검은색이 가진 성과 속의 정체는 무엇인지, 종교성을 띄었을 때의 검은색은 무엇인지, 카라바조와 렘브란트가 표현한 검은색은 어떤 것인지, 멜랑콜리로 된 검은색은 어떤 의미인지, 검은 피부에 대한 경멸은 어디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검은색이 선호의 색이 된 건 언제 무엇 때문인지, 지금까지 지속되는 검은색의 반복은 무엇을 뜻하는지를 다룬다.
이 책의 내용은 방대하며 디테일하다. 검은색을 이토록 분석한 책은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몇 부분을 발췌하면 이렇다.
“죄와 검은색을 연결 짓는 기독교의 전통은 여러 세기에 걸쳐 지속되었다.(중략) 이제 우리는 검은색을 웅장함, 모호함, 불길함과 더불어 절망, 악, 신을 연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검은색’은 고대에 존재하지 않던 개념이다.(중략) 죄의 색깔은 내면의 공간, 즉 시각과 말과 생각이 겹치는 정신적 영역에 존재한다.” -120,121쪽
“기독교의 검은색은 원래 검소하고 속죄한다는 의미로 채택된 것이지만, 머지않아 매섭고 가혹한 교회의 권위를 상징하는 색이 되었다. (중략) 기독교의 검은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기원한다. 이는 예수의 희생뿐 아니라 예수의 수난 그 자체의 어둠 때문이다.”-135쪽
“셰익스피어는 피부색을 성적 충동을 자극하는 매력과 연결 짓는다.” -287쪽
“검은 피부색을 죄, 심지어 악마와 연관 짓는 관념은 널리 퍼졌지만 중세 말기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인종이나 민족 같은 집단보다 개인을 우선했기 때문이다.”-291쪽
“피부색을 묘사하는 색깔은 ‘타자화’ 수단, 즉 타자를 더 ‘타자’로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붉다’고 부르거나 중국인을 ‘누렇다’고 일컫는 것은, 그들이 다른 인종(또는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것을 더 명시적으로 만드는 기능을 한다. (중략) 핵심은 피부색이 그처럼 원색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며, 그래서 이런 색깔로 피부색을 묘사하는 의도는 이질성을 강조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략) ‘검둥이’라는 표현은 우리 내면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모두 꺼내 아프리카인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심리적 ‘불법투기’를 조장한다.”-320,321쪽
“검은색은 평등을 촉진하는 기능을 했다. (중략) 검은색이 민주주의의 색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 교회의 색을 누구나 따라 입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436쪽.
“1800년 프레드릭 윌리엄 허셀은 보이지 않는 빛을 발견해낸다. (중략) 붉은색 너머에 있다는 뜻에서 적외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1801년 독일 제나에서 요한 빌헬름 리터는 은빛 염화물이 태양빛 아래에서 검게 변하는 것을 보고 가시광선스펙트럼 끝에 있는 보랏빛 너머에 자외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외선은 가시광선 사이에 있을 때보다 스펙트럼 밖에서 어둠을 더 강렬하게 만든다.”-402쪽
“검은 옷의 유행과 죽음에 대한 예찬은 부와 세력이 극에 달할수록 번성했다.”-446쪽
발췌문만으로는 앞뒤 맥락이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 전체를 관통하다 보면 블랙의 속성이 무엇인지, 발췌문의 뜻이 잡힌다. 책 읽는 즐거움이 이와 같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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