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피라미드’가 상징하는 바는 두 가지다.
하나는 무덤. 다른 하나는 사회적 계급의 지표.
윌리엄 골딩의 장편소설 『피라미드』 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주인공 ‘나’인 올리버는 영국의 작은 마을 스틸본(가상의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다.
아버지는 약사이며, 음악에 열광하는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다. 올리버 역시 바이올린을 배우지만 그보다는 피아노를 더 잘 치며 좋아한다. 같은 마을의 친구 보비는 아버지가 의사이며 외모가 출중하다. 올리버는 중산층 계급에 속하지만, 상류층의 보비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보비가 같은 마을의 소녀 이비에게 자동차를 태워주며 그녀를 가질 때, 올리버는 자전거를 타며 이비에게 연정을 품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올리버는 이비를 갖게 되자 보비에 대한 승리감을 느낀다. “내가 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생물을 가졌어. 가졌다고!”(95쪽) 그럼에도 올리버는 이비와 결혼할 의사가 전혀 없다. 이비는 퇴역한 중사 출신의 자녀로 하류층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올리버는 이비가 임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경악한다. 그러다 임신이 아니라는 말을 듣자 안도하면서 그 와중에 다시 이비와 자려고 한다. 이비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는 언덕에서가 아니라면 잘 수 없다고 고집한다. 올리버는 언덕에서 이비를 차지하고, 그 장면을 아버지가 망원경으로 보게 된다. 이비는 직장의 또 다른 상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결국 마을을 떠난다. 성적 문란아라는 소문을 들으며 런던으로 가 창녀가 된다.
올리버는 원하던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해 화학을 전공한다. 방학을 이용해 마을에 왔을 때 올리버는 마을 축제에서 이비를 마주친다. 이비는 올리버와 잤던 얘기를 꺼내고, 올리버는 잔 적이 없다고 잡아뗀다. 이비는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는 마을을 찾지 않겠다며 스틸본을 떠난다.
올리버는 또 한 번 방학을 맞이해 스틸본으로 온다. 마침 마을에선 정기공연으로 스틸본 오페라회를 연다. 이 극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게 그려진 선 안의 사람들 소수만이 참여할 수”(149쪽) 있다. 여기서 올리버는 어머니의 열성으로 근위병 역을 맡게 된다. 또한 유년시절부터 열렬히 사랑했던 여자 이모젠을 만난다. 이모젠은 <<스틸본>>이라는 지역신문사 소유주와 결혼한 상류층 여자로, 이 극의 여주인공을 맡는다. 그 극을 연출하는 디트레이시는 올리버가 이모젠에 가진 환상을 깨뜨린다. “그녀는 머리가 비었고 무감각하며 허영심 많은 여자일세. 얼굴이 단정하고 계속 미소 짓고 있을 만큼만 감각이 있지”(193쪽) 이 말에 올리버는 환상을 깨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돌이키지는 못한다. 이비를 차지할 때도 올리버는 “이비가 내 것이 되었다는 걸 이모젠이 알길.”(97쪽)바랄 정도로 이모젠을 짝사랑했던 터다. 올리버는 이모젠이라는 여자를 사랑했다기보다 상류층이라는 계급을 사랑했던 것이다.
올리버는 옥스퍼드를 졸업한 후 다시 고향을 찾는다. 그때 올리버는 좋은 차를 끌고 헨리 아저씨의 정비소에 들른다. 헨리는 웨일스 지방 출신의 떠돌이로, 바운스라는 여자에게 잘 보여 그의 집에 기거하기도 하고 돈을 빌려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헨리는 여전히 싹싹하게 “올리버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바운스가 죽었음을 알린다. 올리버는 바운스에게 바이올린을 배우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바운스는 중성적인 여자로, 아이들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교습시키며 살아간다. 아버지에게서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았으나 저택에서 혼자 산다. 그러던 중 떠돌이 헨리가 나타나 바운스에게 자동차 살 것을 권하고, 바운스는 자동차를 산다. 올리버의 어머니는(마을사람들도) 그 일을 두고 헨리가 “대어를 낚으려는 속셈”(238쪽)이라고 비난하나, 어느 누구도 바운스에게 충고를 하지 않는다. 대신, 커튼을 살며시 여닫으며, 혹은 올리버를 통해 바운스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관음적으로 탐한다.
헨리는 아내와 자식까지 대동하고 바운스의 집에 기거한다. 바운스는 헨리 아내와 툭하면 마찰을 빚는다. 바운스는 집에서 나가라고 하고, 헨리는 돈을 벌 때까지 바운스의 집을 떠나지 않는다. 마침내 헨리가 바운스의 집을 떠나 근처에 집을 지어 나가자 바운스는 헨리를 그리워한다.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 헨리가 고장 난 차를 고치게 한다거나, 레커를 끌고 와 차를 끌고 가게 한다. 그러다 미쳐버리고 교통사고로 죽는다.
헨리는 죽은 바운스를 여전히 좋은 분이라고 말하고, 올리버는 유년시절의 바운스가 끔찍하게도 싫었던 기억을 한다. 올리버와 헨리는 바운스의 묘비가 있는 곳을 돌아본다.
이 소설 전체엔 당시 영국의 폐쇄적이고 왜곡적인 현실이 매설되어 있다. 이 이야기가 어디 1950~60년대 영국에서만의 일일까. 지금도 계급(또는 권력)이 주는 우월감은 신분의 차이를 극대화시키고, 가진 자의 ‘갑질’이라는 사회현상까지 만들어낸다. 자유나 평등은 지금도 ‘피라미드’로 일컫는 계급을 극복하지 못한다. 오히려 '피라미드'라는 무덤에 갇혀 죽어가는 줄도 모르며 죽어간다. 신분의 차이를 당연한 것으로 지지하는 스틸본 사람들,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스틸본 사람들. 그들이 곧 우리라는 사실은 외면하기 어렵다. 오너에게 폭행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모르는 체 자기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 고발은커녕 한패가 되어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람들. 시대가 변했다지만,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나 장치를 만들고 있다지만, 신분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인간이라는 종이 있는 한, 신분의 차이, 계급적 차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이 가진 원초적 불행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그 차이를 좁혀나가려 이런저런 시도를 한다. 윌리엄 골딩처럼 소설로 고발을 하거나, 그림이나 사진, 혹은 시민단체의 지적을 통해 한걸음 나아가려 애를 쓴다. 자유와 평등, 계급의 차이, 이 둘은 합일될 수 없는 관계지만, 합일을 꿈꾼다. 어쨌거나 희망이라는 명찰을 달긴 달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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