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
“글로 승부를 보겠다.”
처음 소설을 쓸 때만해도,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 생각을 놓은 적이 없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등단한 지 16년 째.
문학판에서 원하는 건 실력도 실력이지만 줄이라는 걸 알았다.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줄을 잘 잡아야 이름이 나고 글도 인정받는다.
나는?
나는 목이 뻣뻣한 인간이다.
줄을 대려고 눈도장을 찍거나, 밥을 사거나, 스킨십을 허용하는 따위는 하지 못한다.
그런 눈치를 챌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이 질문 아닌 답은, 흔들리려던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적어도 글은,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세계다.
그런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순진하기 짝이 없다.
나는 글판에 얼굴을 들이댈 시간이 없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6권의 책을 냈고, 곧 나올 장편소설도 있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여전히 무명작가다.
아는 작가는 말했다.
“유명작가 몇 빼면 다 무명작가야.”
맞는 말이다.
내가 처음 글을 쓸 때 나는 유명해지고 싶었나?
아니, 그저 쓰고 싶었다.
부단히 글을 쓰고 책을 발표하면서 나는 모든 작가들의 욕망을 내게서 발견했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인정받음이 곧 유명작가와 등식을 이룬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나를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나를 발견하고, 상처를 치유한다.
나만의 상처라는 건 없다.
상처란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과 시대와 내가 상처라는 공동전선을 이루며 싸워나가는 과정이 글쓰기다.
나는 처음 글을 쓸 때보다 한참이나 건강해져 있음을 발견한다.
이만하면 족하지 않나.
하늘이 흐리고 바람이 불고 미세먼지가 극성이지만,
그 모든 부정의 그늘도 봄을 잉태하고 있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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