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파르마의 수도원>>

유리벙커 2019. 8. 2. 14:22



스탕달의 이 작품은 1796년 밀라노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가 그 시대를 살지 않았으니 당대를 어찌 알 수 있을까. 그 안타까움을 스탕달은 세밀화를 그리듯 하나하나 그려 우리에게 내어놓는다.

흔히 스탕달의 작품을 행복을 추구하는 리얼리즘으로 못 박다시피 하지만 그의 작품을 그리 간단히 말하기엔 부족하다. 적과 흑도 그렇지만 파르마의 수도원역시 간단하지 않다. 내러티브는 파브리스 델 동고라는 귀족 가문의 청년이 겪는 사랑의 일대기이지만, 당시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배경, 귀족과 평민, 계략과 진실, 용기와 배신 등등이 소설 전체에 깔린다. 스탕달은 독자가 어떻게 읽어주길 바랐는지 모르지만, 나는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시대적 혼란에서 인간의 선택은 어디로 향하는지, 사랑이라는 본질적 장치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이탈리아는 군주제가 여전히 힘을 쓰고 있으나, 공화제를 꿈꾸는 자유주의자들이 발아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선 나폴레옹이 이미 워털루 전쟁에 패배하던 시기이지만, 이탈리아의 공화정은 아직 시작하지 않던 때다. 그 어수선한 시기에, 이탈리아의 평민들은 나폴레옹을 찬양하고, 귀족들은 그런 자들을 색출해 감옥에 보낸다. 당시 이탈리아의 귀족들은, 귀족의 조건으로 볼테르나 루소의 책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어야”(346)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헌데 주인공 파브리스는 귀족 가문임에도 나폴레옹을 열렬히 좋아해 17세 때 프랑스로 간다. 그는 나폴레옹 군대의 일원이 되는 걸 염원하며, 특히 나폴레옹을 직접 보기를 갈망하여 무작정 전투에 뛰어든다. 가짜 여권과 통행증을 마련해 돈키호테식으로 천방지축 전쟁터로 뛰어들지만 파브리스의 생각은 딱 하나다. 내가 나폴레옹의 전쟁에 참여했는가? , 천진한 호기심이다. 파브리스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먼발치에서 나폴레옹을 보나, 그때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쟁이 끝나는 시점에서 패배하여 퇴각한다. 파브리스는 전쟁터를 떠나 집으로 귀가하며 같은 생각을 한다. 내가 참여한 게 워털루 전쟁이었나? 총조차 쏠 줄 모르고 기웃거리기만 한 게 전쟁에 참여한 게 되나?

파브리스는 집으로 가는 도중 그의 형이 파브리스를 고발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했다는, 다시 말해 사상이 불온한 자라고 고발했다고 한다. 이에 파브리스는 몰래 집으로 들어가 고모와 엄마, 누이를 만난다. 그 후부터 파브리스는 집을 떠나 여기저기 숨어 지낸다. 이때 그의 고모(후작부인)는 파브리스가 전쟁터로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파브리스를 안전하게 보호하려 온갖 방법을 쓴다. 고모는 남편 후작이 죽은 후, 모스카 백작과 연인 사이로 지내는데, 모스카 백작은 궁정에서 대공을 모시는 권력을 이용해 파브리스를 구하려 한다. 그러는 와중에 파브리스는 자신을 죽이려 달려든 천민을 죽이는 사건에 휘말린다. 그로 인해 감옥에 투옥되고, 고모는 미모를 이용해 대공의 마음을 사로잡아, 파브리스를 출옥시키려 한다.

과정은 순탄치 않다. 20대 초반의 대공은 40세 가까운 고모에게 청혼한다. 고모는 마침 모스카 백작의 청혼에 결혼한 상태다. 모스카 백작의 열렬한 구애와 인간성 때문이라고는 하나, 연금과 권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정략적 계산도 크게 작용한다. 고모는 대공의 청혼을 거절하는데 이 또한 정략적 계산에서다. 이에 대공은 모욕감을 느껴 라씨라는 법무장관을 시켜 파브리스를 독살하려 한다. 라씨는 평민 출신으로, 궁정인들과 대공에게 갖은 천대를 받는다. 라씨의 행동거지는 온 국민이 유행어로 쓸 정도의 천박한 것이긴 하나, 라씨는 어떻게 해서든 귀족 작위를 얻으려 대공은 물론 모스카 백작에게도 접근한다. 그때 만해도 몇 대로 이어온 가문이 중요하지,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탁월해도 귀족의 추천 없이는 관직에 오를 수 없었다.

아무튼, 고모는 파브리스가 태어날 때부터 지켜봐오며, 자신의 가문을 이어 대사제가 되길 바란다. 지금으로선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대사제는 정치적 권력을 가진 대단한 자리였다. 고모와 모스카 백작, 라씨, 대공, 등등은 모든 걸 돈으로 매수하고 사제 자리마저 권력과 돈으로 해결한다. 돈에 관한 관념은 지독히도 현실적이며 노골적이다. 등장인물들은 연인을 삼으려 할 때도, 현재 얼마의 재산이 있으며, 얼마로 연금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세세히 밝힌다. 이 부분에서 제외된 인물이 있다면 파브리스와 클렐리아다.

클렐리아는 감옥을 총괄하는 사령관의 딸로, 파브리스와 사랑하는 사이다. 그녀는 호동왕자를 살리려 아버지를 배신한 낙랑공주의 아이콘으로, 감옥에 갇힌 파브리스를 돕는다. 허나 결정적으로 파브리스를 탈옥시킨 건 고모다.

고모는 파브리스가 나폴레옹 전투에서 돌아오던 때부터 파브리스를 남자로 보며 연모한다. 파브리스 역시 고모에게 연정을 느끼나, 진정한 사랑은 아니라고 여긴다. 고모는 나중에야 파브리스가 클렐리아를 사랑하는 걸 알게 되자 배신감을 느낀다. 따지고 보면 고모가 파브리스를 위해 고군분투한 것은 연정 때문이다. 고모는 배신과 절망을 느끼지만 끝까지 파브리스를 대사제로 만들기 위해 계략과 돈을 쓴다.

파브리스는 마침내 사면이 되어 대사제에 오른다. 마을 사람들은 한때 파브리스를 대역 죄인으로 취급했지만, 그의 설교에 열광하며 우상으로 삼는다. 파브리스가 설교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그간 결별하고 지내던 클렐리아가 자신의 설교를 들으러 교회에 오지 않을까해서다. 클렐리아는 파브리스가 탈옥 한 후, 출세에 눈이 먼 아버지의 협박에 못 이겨 돈과 권력이 막강한 후작과 결혼했던 터다.

클렐리아는 교회에 나와 파브리스의 설교를 듣는다. 파브리스는 어렵사리 기회를 만들어 클렐리아를 만난다. 여기서 클렐리아와 파브리스의 이야기는 급하게 진행된다. , 클렐리라는 결혼 전에 가진 파브리스의 애를 남편의 애인 것처럼 낳아 기른다는 것이고, 파브리스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몰래 자신의 애를 보러 다녔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클렐리아와의 대화에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스탕달이 과거를 거론하며 설명한 부분이다.

그 다음, 파브리스는 자신의 애로 키우고 싶으니 후작이 없는 동안 애가 죽은 걸로 하여 빼돌리자고 한다. 클렐리아는 파브리스의 계획에 죄의식을 느끼나 실행한다. 애는 어느 저택으로 가나 얼마 후에 죽고, 클렐리아 역시 애가 죽은 일 년 후 죽는다. 그러자 파브리스는 재산을 정리하고 파르마의 수도원으로 들어가 은거한다.

이 소설이 줄곧 디테일하게 서술한 것에 비해, 마지막 챕터는 파브리스와 클렐리아가 어떻게 결말을 맺는지 서둘러 봉합한 것으로 보인다. 장편소설에서 흔히 봐왔던, 마지막에 힘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 스탕달이 어떤 의도로 마지막을 이렇게 무 자르듯 했는지 모르나, 스탕달이라는 이름에 기대어 그 점마저 미화시키고 싶진 않다. 마지막 챕터 하나에서, 그것도 설명조로, 결말이 이렇다 라는 식은 거의 보여주기 식이다. 한 챕터가 아니라 몇 챕터는 할애했어야 할 이야기를, 권태 혹은 한계를 느껴 간략하게 그쳤다는 혐의가 짙다.

나는 소설가이며, 글을 쓰는 입장이며 독자이기도 하다. 그 입장에서 볼 때, 스탕달의 마지막 챕터는 크나큰 결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스탕달의 소설은 대단히 훌륭하다. 파브리스라는 귀족 가문의 청년을 내세워귀족이 한갖 천민을 죽이는 것을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던 시대에, 살인죄를 뒤집어 씌워,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점, 사회적 통념과 제도를 알리고자 했다는 점, 그 점을 끝까지 밀고 갔다는 점은 탁월하다.

인간의 욕망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돈과 권력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끌고 가는지, 정치적 갑과 을의 관계가 사람에게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생과 사가 갈리는지도 여전하다. 시대를 초월해 그때를 지금으로 재현 할 수 있게 한 능력은 스탕달이 가진 튼실한 힘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왜 고전 반열에 올랐고, 오를만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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