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의 이 작품집엔 <코> <외투> <광인일기> <초상화> <네프스끼 거리>가 수록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현실과 상상을 절묘하게 넘나든다. 이 점은 고골만이 해낼 수 있는 기법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현실인가 싶으면 상상이고, 상상인가 싶으면 현실로 돌아와 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는 구분되지 않으나 어느 새 구분되어져 있는 그러한 상황이다. 1800년 대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 초현실적이며 현대적이다. 차르가 통치하던 시대라는 걸 감안하면, 고골의 작품은 시대를 일찌감치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고골의 작품은 일단 재미있다. 신선한 소재와 간결한 내러티브로 재미를 더하며, 풍자를 통해 당대의 사회를 저격한다.
그 중 <코>를 살펴보면, 1836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신체 일부인 ‘코’를 소재로 삼았다는 게 특이하다. ‘코’란 무엇인가. 얼굴 복판에 떡하니 자리한, 가장 입체적인 부분이 아닌가. 노출도가 심해 가려도 잘 가려지지 않는, 자존심과 허영을 상징하기도 한다. 콧대가 높다느니, 코가 큰 걸로 봐 잠자리를 잘 하게 생겼다느니, 성적 비유에 사용하기도 한다.
<코>의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이발사는 아내가 구운 빵에서 코를 발견한다. 이발사는 전날 8급 관리인 소령을 면도해주다 코를 베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깜짝 놀라 코를 버리러 다리로 가지만, 경찰에 들키고 만다.
한편, 코를 베인 8급 관리인 소령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 자신의 코가 없어진 사실을 안다. 그는 코 없이 어떻게 사교계를 드나들며 여자들을 만나나 몹시 절망한다. 그는 자신의 코를 찾으러 밖으로 나간다. 여기저기에 들러 자신의 코를 벤 사람, 혹은 자신의 코를 찾으나 찾지 못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자신의 코가 5급 관리 행세를 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본다. 소령은 자신의 코를 잡으러 코 뒤를 쫓지만 잡지 못한다. 그렇게 애타는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소령은 경찰로부터 자신의 코를 받는다. 소령은 의사를 찾아가 코를 붙여달라고 애원한다. 의사는 도저히 붙일 수 없다고 말하고, 소령은 훌륭한 사람들과 저녁 파티가 두 군데 있으니 붙여달라고 애걸복걸한다. 결국 소령은 코를 붙이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또 어느 날, 소령은 자신의 코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얼굴 복판에 붙어 있음을 발견한다.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당시 관리제도이다. 5급, 8급, 사람에 등급을 매겨 등급에 맞는 취급을 당연시 한다. 자신의 코가 5급 관리 행세를 하며 돌아다닐 때, 8급 관리이던 소령은 쉽사리 5급 관리 행세를 하는 코(관리)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이 부분은 8급 관리가 5급 관리가 되길 갈망했다는 은유로 볼 수 있다. 8급 관리임에도 사교계를 드나든다는 말은 그렇게 되고 싶다는 또 하나의 욕망이다. 즉, 고골은 뻬쩨르부르그라는 도시가 갖는 허영을, 그 도시의 사람들을 통해, 구체적인 ‘코’를 통해 드러낸다.
뻬쩨르부르그는 러시아의 신흥도시로, 유럽을 모방하려 했으며, 화려한 신흥 문물을 받아들여 도약을 꿈꾼다. 이러한 도시는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야 인간 노릇을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고골은 이 점을 현실이자 상상이라고 간파했고, 그래서 현실이자 상상인 장치를 써 한편의 소설을 완성한다.
또 하나의 작품 <외투>는 <코>에 비해 현실적이나 유령이 나타나는 장면은 비현실적이다. 이 작품에서도 기저를 이루는 것은 관료계급이다. 관료들은 등급에 따라 외투가 달라진다. 주인공은 관청에서 정서 업무를 맡은 만년 9급 관리로, 다 헤진 외투를 입고 다닌다. 관청 동료들, 심지어 그보다 못한 계급의 사람들도 그를 얕잡아보며 우습게 여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9급 관리의 운명을 타고 난 듯한 환경에서 태어난다. 즉, 계급의 대물림을 암시한다.
몹시도 추운 날, 그는 출근을 한다. 바람이 숭숭 들어와 외투를 살펴보니 구멍이 뚫려있다. 그는 낙담을 하며 옷 수선공을 찾아간다. 수선공은 그의 옷을 살펴보며, 더는 수선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미 덧대어 붙인 곳은 미어졌고, 더는 다른 데서 뜯을 곳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새로 옷을 맞추라고 한다. 주인공은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해 새 옷을 맞추기로 한다. 새 옷 값을 지불하기 위해 끼니를 줄이기도 하고, 절약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새 옷을 찾아 입고 출근한 날, 그는 동료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는다. 한 동료는 축하하는 의미로 자신의 집에서 파티를 열겠다고 한다. 주인공은 새 외투를 입고 동료의 집에 간다. 그는 파티에서 술에 취한 후 그 집을 나선다. 집으로 가는 그때 강도를 만나 외투를 잃는다.
그는 외투를 찾으러 고위층 관료를 찾는다. 고위층 관료는 그에게 “지금 얘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나? 누구 앞인지 아느냐고?” 하면서 그를 박대한다. 그는 그 충격으로 거의 움직이지 못한 채 실려 나간다. 그 후부터 그는 집에서 앓다가 죽는다.
그가 죽자 뻬쩨르부르그에는 그의 유령이 나타나 외투를 빼앗아간다는 소문이 자자해진다. 고위층 관료는 파티가 끝나자 애인에게 가려고 마차를 탄다. 그때 주인공 유령이 나타나자 고위층 관료는 외투를 벗어 던지고 줄행랑을 친다. 주지하다시피, 고골은 계급으로 인간성을 상실하는 당대를 ‘외투’라는 도구로 고발한다. 여기서 번역자(조주관)의 말을 옮겨본다.
“관등을 나타내는 숫자는 이미 생명체에서 생명을 없애고, 그 자신이 하나의 생명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관등은 인간을 지배하는 유일한 활동체가 된다. (중략) 이런 관등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설정된 것이다. 인간은 관등의 노예로 전락한다. (중략) 살아 있는 것은 인간들이 입고 있는 관등을 나타내는 옷이다.”
'나의 소설 > 독서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마디즘>>을 노마드하다 (0) | 2020.04.24 |
---|---|
대머리 여가수 (0) | 2019.09.15 |
<<파르마의 수도원>> (0) | 2019.08.02 |
<<이별의 푸가>> (0) | 2019.07.21 |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0) | 2019.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