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갑오징어는 왜 빼를 가지고 있을까.

유리벙커 2020. 1. 15. 14:16

쇼핑센터를 둘러본다.

매장마다 많은 옷이 걸려 있고, 백이며 구두, 온갖 장신구가 호객한다.

물건을 고르거나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저 많은 물건을 어찌하면 좋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1980년대로 기억한다.

동네 친구는 매장에 걸린 옷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휴, 저 많은 옷을 다 어쩐다냐. 보는 것만으로도 걱정스럽다.”

불경기는 늘 있어왔지만 올해는 더욱 심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들 정부 탓이라고 한다.

정부만 탓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전 세계는 우리나라처럼 불경기에 시달린다.

앞으로는 더더욱 불경기가 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우선은, 사람이 맡던 일을 AI가 대신한다. 당연하게도 일자리는 부족해진다.

일자리가 없으면 소득이 없다. 소득이 없는데 소비가 있을 리 만무다. 소비가 없으면 생산도 줄인다. 생산을 줄이면 일자리도 줄어든다. 악순환이다.


 

지인 중 한 분은 퇴직 후 빌딩 주차 정산원으로 재취업했다.

몇몇 직종을 아르바이트로 다니다 정직원으로 얻은 일자리였다.

그분은 다른 업종에 비해 소위 꿀 떨어지는 직종이라고 좋아했다.

그렇게 두어 달 다닌 어느 날, 빌딩 관계자가 말했다고 한다.

출차 차단기를 자동으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정확히 언제라고 말하긴 어려워도 주민들의 요구 사항이라 자동으로 교체되긴 할 거라고.


 

AI는 양날의 칼이다.

편리하고 좋긴 하나 인간의 능력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전문가 몇 만 있으면 우리는 굳이 머리를 쓸 필요도, 머리 깨지게 공부할 필요도 없다. 그게 좋기만 한 현상일까. AI를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은 재력이 있는 자들일 테고, 재력이 달리는 자들은 AI로부터 소외될 것이다. 그렇잖아도 돈으로 계층이 형성되어 있는 마당에 계층의 차별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인의 말대로, 아껴가며 살아야한다는 자조 섞인 말만 믿어야 할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쇼핑센터에 걸린 옷들처럼, 구매자가 없는 옷들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갑오징어를 손질한다.

그 많던 갑오징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어째서 갑오징어는 뼈를 가지고 있을까.

원래부터 살아남기 위한 구조적인 발달인가, 아니면 바다 생물들에도 AI와 같은 무엇인가가 있어 그렇게 뼈를 만들게 된 것일까.

사는 게 무서워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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