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n번방 텔레그램’이 터졌다. 그동안 간간이 거론되던 온라인 성폭행이, 주범 조주빈이 검거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조주빈은 검거를 당하자 자해를 해, 얼굴 공개 시에는 머리에 반창고를 붙이고 목 보호대를 했다. 덕분에 얼굴은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이다. 그런 그는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까. 태어나서부터 명문대를 준비하는 우리나라 교육의 민낯일 수도 있고, 돈을 최고의 가치로 인식하는 자본주의의 민낯일 수도 있다.
그의 얼굴을 보자 내가 겪은 일이 오버랩 된다.
몇 년 전 컴퓨터가 먹통이 돼 인터넷으로 검색한 업체에 문의했다. 업체 직원이라는 남자가 집으로 왔다. 직원은 집에선 고칠 수 없으니 업체로 가져가 고쳐야 한다고 했다. 컴퓨터 기기의 지식이 없는 나로선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직원이 내 컴퓨터를 가져간 후 연락 온 내용은 비용 지불이 꽤 되는 금액이었다. 나는 그 값을 주곤 고치고 싶지 않으니 도로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 후부터 그와의 통화는 되지 않았다. 다른 전화번호로 문자가 온 내용은, 가져가는 비용을 줘야 하는데, 그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지만 통화는 되지 않았다. 문자로 여러 번에 걸쳐 내 의사를 말했지만, 그쪽에선 점점 약을 올리는 문자와 협박에 가까운 문자만 보내올 뿐이었다. 나는 고소하겠다는 말까지 했고, 그쪽에선 맘대로 하라고 했다. 내 컴퓨터가 n번방의 피해자처럼 인질이 된 셈이다. 내 컴퓨터엔 개인사며 사진이며 소설이 빼곡했으니, 인질로는 맞춤이었을 터다.
결국, 나는 인터넷에 나온 주소로 업체를 찾아 나섰다. 주소에 적힌 빌딩엔 그런 업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아줌마라 약점을 잡고 이러나 싶어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들이 전화를 걸고 문자를 했지만 돌아온 건 내게 했던 내용 그대로였다. 할 수 없이 아들은 비용 지불을 할 테니 컴퓨터를 보내달라고 했다. 비용 지불을 하자 컴퓨터가 왔다. 내용은 이미 다 삭제된 상태로, 컴퓨터는 그저 고철에 불과했다. 업체 측의 복수였다. 내가 자기들 말을 듣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
당시, 우리집에 와 컴퓨터를 가져간 직원의 얼굴은 조주빈의 얼굴과 다르지 않다.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얼굴. 그 얼굴들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비웃는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얼굴로, 협박과 사기질과 양아치질로 돈을 버는 인간쓰레기들.
인간쓰레기는 많다. n번방의 고객들. 26만 명이나 된다는 남자들. 그들 역시 우리 주변에서 성실한 아빠로 오빠로 형과 동생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조주빈처럼 봉사도 하고 조언도 하면서, 건전한 사회의 일원인 척하기도 할 터이다. 그 이중적 얼굴이야말로 야누스다. 겉으론 착실하고 양심적인 사람, 속으론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사람.
어쩌면 야누스적 생활이야말로 가면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허나, 조주빈처럼 파렴치한 가면은 아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써야했던 우리의 오빠나 남편과는 다르다. 헌데, 그 n번방에 회원으로 가입한 남자들의 가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선을 넘고 바닥을 치는, 조주빈과 다르지 않은 가면을 쓴 사람들이다. 그들이 처벌받길 원한다. 그들은 살기 위한 가면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통해 성을 즐기는 악마일 뿐이다.
조주빈도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 “악마의 짓을 멈추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그의 말은 진심일까. 아니,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처벌을 가볍게 하려고 지어낸, 혓바닥의 놀림일 따름이다. 그가 미안하다며 거론한 손석희며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며 김웅 기자는, 조주빈이 짠 치밀한 각본이다. 유명인을 내세워, 내 회원 중에 이런 거물급들이 있으니 거물급 회원들은 조심해라, 내 말 한마디면 날아간다, 뭐 그런 메시지다.
조주빈은 온라인 성폭행으로 돈을 버는 것을 넘어, 돈이 되는 거라면 닥치는 대로 하는 돈의 노예다. 돈이라는, 욕망의 노예. 허점 많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 되려는 욕망. 신이 된 줄 아는 교만하고 어리석은 욕망.
지나친 욕망은 제어하기 어렵다. 욕망이 선을 넘는 순간, 인간은 욕망의 노예가 된다. 조주빈은 욕망이라는 직선을 타다 탈선한다. 검찰에 잡혔지만 그는 자신의 욕망을 믿는다. 유력 인사들을 핸들링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욕망. “국가는 자신을 잡지 못한다”는 맹신. 그로인해 그는 신이 된다. 아닌 게 아니라 n번방의 회원들은 조주빈에게 시대를 이끄는 선지자라 칭하기도 했다. 그는 일베 회원이다. 국가를 부정하고, 국가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조직의 일원. 끔찍한 일이다.
평범한 얼굴은 이제 평범하지 않다. 남편을 살해해 토막 낸 고유정 역시 평범한 얼굴이지만 평범하지 않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떠오르는 시점이다. 자신의 잘못을 시대와 지도자에 떠넘기며, 자신들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라고 말하는 악의 평범성. 조주빈이나 고유정, 연쇄 살인마들 역시 자신의 욕망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욕망 자체는 욕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욕망에 지배당하는 순간, 사람은 사람이 아니게 된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기에 그렇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거나 생각하지 않기에 그렇다. 자신만이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에 그렇다.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을까.
불행은 정지되어야 한다. 너와 내가 ‘같이’ 살아가자면, 우선 ‘같이’ 살 수밖에 없는 사회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인식의 부재는 트러블을 유발한다. 다툼과 전쟁이라는 트러블. 헌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은 다툼과 전쟁을 싫어하면서도 끊임없이 유발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어느 단체, 어느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이제 그만 멈추자. 스톱이 주는 미덕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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