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삼식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삼식이는 퇴직한 남자가 집에서 꼬박 세끼를 먹는다는 뜻으로, 웃자고 하는 얘기다.
나는 도덕주의자나 인류애에 몸 바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삼식이라는 용어가 대단히 불편하다.
삼식이는 여자 입장에서 남자를 비하하는 말로, 드러내놓고 비난은 하지 못하겠으니 희화화라도 해서 비난하고 싶은 심리에 근거한다.
무리는 아니다. 여자도 할 말은 많다. 육아를 책임지고, 살림을 하면서, 때론 시어른도 모시고 산다. 그렇게 인생을 다 보내고 이제 좀 쉬려나 했더니 남편이 퇴직을 해서 세끼를 챙기는 입장이 되고 만다. 억울하다면 억울하다.
그러나 남편 입장에서 보면 ‘삼식이’는 테러적 언어다. 처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청춘을 다 바쳤는데, 이제 와서 밥이나 축내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으니 자괴감이 밀려온다.
어느 여자는 이런 말을 한다. 그럼 남자가 돈 버는 일을 안 하면 집에 박혀 살림을 할 거야?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여자는 육아와 살림으로 평생을 바친 피해자라면, 남자는 모멸을 견디며 사회생활을 버텨낸 피해자다. 인생이 그런 거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여기서 키워드는 상호존중이다.
굳이 ‘삼식이’라는 사회적 타살 용어를 써가며 남자/남편을 몰아 부칠 일인가. 피해자가 피해자를 갈구는 꼴이다.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여자 입장에서, 육아와 살림을 해서 손해만 봤나? 남자 입장에서 돈을 버느라 고생만 했나?
육아와 살림과 돈 버는 일에는 보람이라는 숨은 보석이 들어 있다. 힘들었을 때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 힘을 내던 순간들. 아이들이 자라고 아끼고 아껴 살림이 늘어나던 일들. 그런 것을 ‘함께’했던 사람이 부부다.
‘삼식이’를 입에 올리기 전에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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