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이 노래만 들으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동창입니다. 그 친구는 예쁘다고 할 순 없지만 지금 생각하면 개성 있는 캐릭터입니다.
봄 소풍 때입니다. 여학생들은 자유 시간을 끝내고 모두 모여 앉습니다. 일종의 장기자랑 순서입니다. 말이 장기자랑이지 노래가 주를 이룹니다. 그때 한 여학생이, 쟤요~ 쟤요~ 라는 손가락질 추천도 없이 자진해서 나옵니다. 그 친구가 나오자 여학생들은 뜨악해집니다. 그닥 존재감이 없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그 친구와 말을 나눈 적은 없습니다.
그 친구가 마이크를 잡습니다. 선생님이며 같은 학년의 친구들이 일순 조용해집니다. 그 친구는 한 손은 교복 스커트 주머니에 푹 찌르고 한 손은 마이크를 잡고 Stand By Me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반주가 있을 리 만무이니 무반주로 부릅니다. 헌데 이 친구, 진심을 다해, Ben E King처럼 허스키로 끝까지 부릅니다.
당시엔 달콤하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곡이 애정 받던 시절입니다. 헌데 깡패 같은 곡을, 깡패 같은 스타일로, 깡패 같은 애가 부르는 겁니다. 당시, 범생 중의 범생이던 제가 그렇게 느꼈다는 겁니다. 묘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깡패 같은 매력에 푹 빠지고야 말았습니다. 특히나 스커트 주머니에 한 손을 푹 찌르고 조금은 건들건들대며 부르던 모습은 정말이지 최고였습니다.
그 친구는 대놓고 날라리도 아니요, 그렇다고 착실하거나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요, 껌 좀 씹는다는 축도 아니요, 그렇다고 안 씹는 축도 아니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얼치기도 아니요, 도대체가 가늠할 수 없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자진해서 마이크를 잡던 순간은 놀람 그 자체였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 친구처럼 집중력을 모을 수는 없을 겁니다. 모두를 몰입의 경지에 꽂아 넣던 그 경이로움이라니.
운동할 때는 노래를 듣습니다. 멜론에서 다운 받은 노래 중에는 Stand By Me도 있습니다. 그 노래를 다운 받은 건 순전히 그 친구가 생각나서입니다. 그 친구의 깡패 같은, 조금은 삐딱한, 그런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친구에게서 흘러나온 것은 아마도 끼일 겁니다. 끼는, 불량한 것도, 무질서한 것도, 사회화가 덜 된 것도 아닙니다. 인간적인 향이며 솔직한 내면이며, 가식 없는 흥입니다. 저는 끼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때로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쭉 그랬던 듯합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제는 나를 품고, 나는 거제를 품고 (0) | 2023.03.24 |
---|---|
금포마을 빈터에는 (0) | 2023.03.01 |
장날 (0) | 2021.10.04 |
'삼식이' 다시 보기 (0) | 2020.09.25 |
사는 건 운전하는 것과 같아야 (0) | 2020.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