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장날

유리벙커 2021. 10. 4. 18:07

장날에 맛 들였습니다. 벌써 두 번째 고성 장날에 갔다 왔거든요.

집에서 차로 40분 정도 가면 고성이 나옵니다. 장날만 구경하긴 뭣해서 간 김에 공룡화석지도 가보고 이번엔 소가야의 고분이 있다는 송학동에도 갔댔습니다.

장날 이야기를 할까요.

이번엔 살 것도 별로 없어서 장바구니 한 개만 달랑 들고 시장에 들어섰습니다.

주로 좌판에 늘어놓고 파는 물건들을 둘러보는데, 어쩌면 좋아요. 살 게 자꾸 늘어납니다. 싱싱해서, 싸서, 사는 재미가 마구 붙습니다. 고구마도 사고, 포도도 사고, 마른 오징어며 고등어도 사고, 작은 통배추 묶음도 사고, 통배추를 사니 열무와 쪽파도 사게 됩니다. 장보기가 본격적으로 들어간 겁니다. 이럴 바엔 국수라도 먹고 하자 싶어 칼국수 집엘 들어갑니다. 옛날 칼국수를 시킨 후 칼국수가 나오길 기다립니다. 자연스레 맞은편으로 눈이 갑니다. 칼국수 집 앞엔 화분들이 층층이 죽 놓여 있습니다. 벌떡 일어나 화초 파는 데로 갑니다. 수경식물 두 종류를 산 후 칼국수를 먹습니다.

장바구니 한 개론 어림도 없습니다. 다시 차로 가서 캐리어를 가져옵니다. 이번엔 꽈리고추가 눈에 들어옵니다. 꽈리고추 한 봉지를 삽니다. 꽈리고추 옆 다라이에 또 눈이 갑니다. 물에 데친 누런 이파리 묶음입니다. 깻잎을 차곡차곡 묶어놓은 듯, 어찌나 정성스레 묶었던지 다듬고 묶었을 그 마음이 소중해집니다. 저게 뭐냐고 묻습니다. 아주까리랍니다. 아주까리라니, 그 옛날에 봤던 아주까리 잎? 시어머니가 마당에 있던 아주까리에서 잎을 따다 무쳐주던 그 아주까리 잎?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던, 참으로 신기했던 그 맛의 아주까리 잎?

아주까리에 대한 영상이 휙휙 지나가는데, 꽈리고추를 팔던 촌 할머니가 말합니다.

저거, 아주 맛나다. 마늘 쪼끔 옇고! 참기름 쪼끔 옇고! 깨소금 쪼끔 옇고! 쪼몰쪼몰 무쳐가! 자작하게 물을 옇고! 볶아주면 된다.”

촌 할머니는 단어 외우듯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한 말을 하고 또 합니다. 말하는 내내 입가에 웃음을 띠고, 목소리는 리듬을 탑니다. 촌 할머니가 참 귀엽습니다. 두 덩어리를 사서 셈을 치릅니다. 할머니가 아주까리 묶음을 집으러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기역 자 허리입니다. 좌판을 끼고 앉은 할머니들이 일어날 때마다 보았던 기역 자 허리입니다. 속이 짠하고 아리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할머니는 비닐봉지에 아주까리 잎 덩어리를 넣어줄 때도, 마늘 쪼끔 옇고! 참기름 쪼끔 옇고! 깨소금 쪼끔 옇고! 옇고, 옇고, 옇고를 계속합니다. 리듬을 타는 할머니의 말이 아주아주 재밌고 예쁩니다.

경상도 어투를 생생하게 전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문자의 한계가 바로 이런 것일 겁니다. 사투리의 그 생생함은 구어체라 해도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겨우 느낌표로 애를 써봤는데 서울쟁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요것밖엔 없습니다. 하물며 외국어로 번역을 한다면 그 맛깔스러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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