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의 저 유명한 『카메라루시다』를 읽고 싶었던 건 오래 전이다.
여러 번 기회를 놓친 끝에 얼마 전에야 읽었다.
일단 책을 사려고 알라딘에 들어갔지만 절판된 지는 오래.
중고 가격을 보니 몇 달 전만 해도 3만 원이 넘었는데 한 달 후엔 5만 원이 넘었다. 어제 보니 69,900원을 찍는다. 그만큼 소장 가치가 있다는 말이겠다.
일단 도서관에서 빌리기로 한다.
도서관에 갔지만 없다. 사서에게 말하니, 창원에 있는 도서관에는 있으니 가져다 놓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일주일 만에 『카메라루시다』를 손에 넣는다. 가슴이 두근두근.
유감인 것은, 내 책이 아니기에 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책에 메모를 끄적일 수 없다는 점이다.
해서, 메모 노트를 옆에 두고 좋은 대목을 써 두기로 한다.
책을 반납하고 메모 노트에 적은 글을 타이핑하는 데,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다.
“지식에 대해 연애 감정을 느끼는 자아가 있기 때문”(35쪽)이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에서 두 가지를 읽는다.
하나는, 지적 허영 의식.
다른 하나는, 지식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
그럼 나는?
나는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설탕의 맛과는 다르다.
그러나 과부하가 일면 허영이 되기 십상이기도 하다.
더구나 지식에 관한 허영과 애정의 경계는 구분하기 어렵다.
뒤죽박죽 섞여 있다 어느 땐 허영으로, 어느 땐 애정으로 드러나기 일쑤다.
친구와 강변을 산책하던 때다.
친구가 묻는다.
“넌 사람을 만날 때 뭘 먼저 보니?”
“인격. 넌?”
“난 지知.”
그때 난 속으로 생각했다. 지知? 사람을 만나는 데 뭔 지知?
그 친구는 말이 통해야하기 때문에 지知가 있어야 한다는. 조금은 이상하고 조금은 교만한 논리를 펼친다.
다시 “지식에 대해 연애 감정을 느끼는 자아”를 생각한다.
나는 지식과 연애하나?
다시, 또 다시 생각한다.
책/글은 지식만 전하는 게 아니다.
기쁨과 위안도 주고, 슬픔을 통과하면서 자아의 발견을 돕기도 한다.
바르트의 “지식에 대해 연애 감정을 느끼는 자아”라는 문장이
오늘의 나를 움직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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