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해변 너머 저기

유리벙커 2024. 4. 2. 14:28

간만에 해변으로 나왔습니다.

봄바람이 제법 셉니다.

괜히 나왔나 발걸음이 머뭇댑니다.

고집 좀 부리자 마음을 돌립니다.

 

바다는 언제 봐도 좋습니다.

 

봄바람은 사람 마음처럼 변덕을 부리느라 부산합니다.

바닷물은 바람이 부는 대로 울렁울렁 무늬를 만들고 있습니다.

후드 티의 모자로 머리를 덮습니다.

하늘은 구름을 띄우고 푸르르하다 흐리흐리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바다색은 항상 하늘과 짝을 이룹니다.

하늘이 파라면 바다도 파랗고, 하늘이 흐리면 바다도 흐립니다.

오늘은 많이 걷기보다 바다를 실컷 보려고 나온 터라, 바다를 향한 벤치에 앉습니다.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맥락 없이 떠오릅니다.

생각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하나의 생각을 밀어내고 새로운 생각을 자꾸만 던집니다.

 

며칠 전엔 다 쓴 장편소설을 남편에게 주며 읽어봐 달라고 했습니다.

해변으로 나오기 전,

남편은 다 읽었다며 휴~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주인공 아무개가 불쌍하고 짠하답니다.

마치 자신이 겪은 양 표정이 진지합니다.

그 말에 기운이 불쑥 납니다.

아주 쓰레기를 쓴 건 아닌 모양입니다.

 

춥고 더울 땐 집에 박혀 글을 쓰고,

계절이 좋을 땐 열심히 돌아다니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글이라는 게 계절이나 시간을 타는 것도 아니고

떠오르고 쓸 기력이 있는 것만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벤치에 마냥 앉아 있는데 어느새 나갔던 물이 차오릅니다.

바람도 잦아들고 해도 짱하게 떠서 벤치에 내려앉습니다.

모처럼,

혼자,

바다와 생각을 독차지 하고 있는 지금이 흡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