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동시집 『넉 점 반』

유리벙커 2023. 9. 7. 18:37

친구 추천으로 윤석중의 동시집 넉 점 반을 도서관에서 빌렸습니다.

넉 점 반을 여는 순간 가슴에 지진이 납니다.

주인공 아가의 그림은 그냥, ~ 깨물어먹고 싶다, 그게 전부입니다.

반복, 반복, ~ 깨물어먹고 싶다,입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눈이 그림에 박혀 나올 줄 모릅니다.

아가는 엄마 심부름을 갑니다. 지금 몇 시나 됐나 물어보는 심부름입니다. 아가는 구복상회라는 가겟집으로 가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묻습니다. 돋보기를 쓴 가겟집 할아버지는 넉 점 반이다알려줍니다.

아가는 시간을 잊지 않으려 넉 점 반” “넉 점 반을 외우며 집으로 갑니다.

가는 도중 아가는 개미가 노는 것도 보고, 닭이 물을 먹는 것도 보고, 잠자리 떼가 나는 것도 보고, 꽃이 핀 데서 꽃을 따먹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넉 점 반을 종알댑니다.

그렇게 혼자 놀다 날이 저물어서야 집에 옵니다. 아가는 엄마에게 넉 점 반이래하고 말합니다. 엄마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고, 형제들은 작은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중입니다.

참 포근포근하고 아기자기한 우리들의 이야깁니다.

어려운 글을 읽느라 끙끙대는 것도 한재미가 있긴 합니다만, 이렇듯 복잡다단한 것들을 단순화시켜주는 글과 그림도 참으로 좋습니다. SNS에 매몰된 시간도,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는 일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잊게 합니다.

그림을 그린 이영경 작가님은 본 적이 없지만 지독히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아가의 그림은 말할 것도 없고, 가겟방 할아버지의 표정과 방안 풍경은 현재인 양 생생합니다. 코끝에 걸친 돋보기, 라디오를 수리하는 진지한 표정, 벽에 걸린 아들내미 대학 졸업사진, 시계를 보는 표정 등은 살아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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