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처럼 즉각적이며, 강렬하며, 감각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매체도 드물 것이다.
『퓰리처상 사진』은 사진의 백미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책이다.
332쪽의 두꺼운 이 책에는 사진/사진기의 발전과 그에 따른 역사적 맥락이 간단명료하게 적혀 있다. 또한 사진기자들의 열정과 애환, 순간의 포착을 위해 생명을 건 스토리도 간략하게, 그러나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재난현장의 사진을 볼 때 충격을 받으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한다. “저 순간에 사진이나 찍고 있었다니” 혹은 “사진 찍을 때 한 사람이라도 구하지”
그러나 ‘다만’ 사진 한 장이 아니다.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로 전송되면 그 파급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예컨대 반전시위를 이끌어 내기도 하고, 인종차별을 규탄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법이 제정되기도 한다. 현재와 미래의 현실이 ‘사진 한 장’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퓰리처상 사진』에 실린 사진들은 거의 대부분 잔인한 현실을 고발한다. 보는 눈을 의심케 하며, 지구 저쪽 어디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구나,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사람이 사람을 끔찍하게도 해할 수도 있구나,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환경이나 정치가 무엇이기에 저토록 소름끼치는 짓을 할 수 있나, 답이 없는 답을 더듬게 된다.
분명한 것은, 사진기자도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들도 사건의 현장을 보며 경악해서 셔터를 누르지 못할 때가 있다. 때론 눈물을 흘리며 겨우 셔터를 누르고, 사진을 전송한 후에는 보고 느낀 사건에 대해 반추하길 꺼려하기도 한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적군을 찍는 일, 일 미터 정도까지 다가온 살인자, 전신이 마비될 정도의 공포를 느끼지만 사진기자들은 셔터를 누른다.
그러한 일들로 많은 사진기자가 죽었고, 납치되었으며, 고문을 당하고, 실종처리 되기도 한다.
그들은 정의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퓰리처상을 염두에 둔 때문일까. 둘 다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본능적 감각이 작동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서문을 쓴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퓰리처상 사진 부문에서 수상하려면 얼마만큼의 재능과 노력 그리고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지”라고 말한다.
그는 두 번이나 퓰리처상을 탄 호르스트 파스에 대해서 언급한다.
“나는 그가 얼마나 뛰어난지, 얼마나 열정적인지,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지 (중략) 또한 그가 이룬 일 중 우연의 산물은 거의 없다는 것도, 파스가 거둔 성과는 치열한 노력, 철저한 준비, 엄청난 희생의 결과였다.” “파스가 늘 완벽한 사진을 얻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가 누구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정치적·군사적 사건들을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령 남베트남의 어떤 부대가 치르는 전투에 나갈 예정이라면 파스는 그 부대의 사령관이 얼마나 뛰어난지 미리 확인했다. 형편없는 지휘를 받는 군대와는 전장에 나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트남군 장교가 우수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파스는 작전에 나가기 전에 미리 비공식적으로 둘러보면서 병사들의 라이플총과 장비 상태를 점검했다. 보병들이 무기와 장비에 대해 무심한 경우에는 그것이 그 부대의 지휘 체계가 형편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판단해 그 부대의 전투에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미군이 철수한 뒤 베트남의 상황이 훨씬 위험해졌던 전쟁 막바지에 파스는 옷 속에 전대를 숨기고 전장에 나갔다. 전대에는 수천 달러가 들어 있었다. 심한 부상을 당하거나 주변이 완전히 파괴되면 그 돈으로 헬리콥터의 빈 좌석을 사서 자신과 친구의 목숨을 구하려 한 것이다. 내가 알기로 파스는 사진을 찍은 뒤 필름이 물에 젖지 않게 하려고 콘돔을 들고 현장에 나간 최초의 사진기자였다. (중략)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가짜 필름을 들고 다닌 최초의 사진기자였다. 검문소에서 필름을 달라고 요구하면 거부하는 척하면서 가짜 필름을 주고 진짜 필름은 잘 숨겼다.”
모든 사진기자가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찍는다, 혹은 생명을 버려가며 찍는다는 선입견을 일깨운 일화다.
다음, 우리가 궁금해 하는 점을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밝힌다.
“퓰리처상 수상작의 요건을 무엇일까? 수십 년 동안 사진가와 사진기자들을 괴롭혀온 질문이다. 지금도 그 정확한 답을 말하기 어렵다. 사진이 퓰리처상을 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건은 단순하다. 수상 전년도에 촬영해 미국의 일간신문에 실린 사진이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다른 조건은 없고, 어떤 지침도 따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렇게 생각하면 쉬운 듯하나 결코 쉬운 조건은 아니다. 미국과 일간신문이라는 공간적 제한을 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신문기자가 아닌 일반인이 찍은 사진도 종종 퓰리처상을 받는다. 조건의 옵션쯤 되는 일 같기도 하다.
이 책이 방대해서 사진을 다 실을 수는 없지만, 전반부에 실린 사진 몇 컷을 소개한다. .
1963년 베네수엘라, 정부군이 반란군을 진압할 때
한 신부가 탄환이 빗발치는 거리로 나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군인에게 다가가 종부성사를 한다.
1968년 플로리다, 동료 전선기술자가 2100볼트에 감전되어 기절하자
다른 동료가 와서 거꾸로 매달린 동료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다.
1988년 12월 말 세인트루이스,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아파트 실내를 기어다니는 아기를
구출해 심폐소생술을 한다. 아기는 6일 후 사망.
게릴라를 잡아 심문한다.
'나의 소설 > 독서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극단적 흰빛>> (0) | 2025.02.12 |
---|---|
<<세상을 바꾼 사진>> (0) | 2024.05.10 |
동시집 『넉 점 반』 (0) | 2023.09.07 |
『레베카』 (0) | 2023.08.17 |
『고비에서』 (0) | 2023.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