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독서감상문

<<세상을 바꾼 사진>>

유리벙커 2024. 5. 10. 17:37

사진의 발명은 가히 인간사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은 순간을 정지시킨 생생하고도 확고부동한 증명서다.

(사진을 조작하는 기술이 나오기 전에나 통할 얘기지만, 지금도 이 말은 사실이다.)

 

세상을 바꾼 사진엔 그야말로 세기적 혼란기라고 할 수 있는 1900년대 사진이 주를 이룬다. 사진에는 권력과 희생, 노동 착취와 전쟁에 따른 폭력의 이미지가 충격적으로 나온다. 1908년 미국 아동의 노동 현장의 사진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이륙에 관한 사진과 대조적이다.

1910년대로 넘어가면 멕시코 혁명의 사진이, 1915년엔 오스만제국이 아르메니아인을 대학살한 사진이, 1916년엔 독일이 프랑스 베르됭시를 대대적으로 공격한 사진이 실려 있다. 실로 가공할 참사는 100년이 넘는 시간을 넘어 당시를 증언한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사진

                                                               

헝가리 봉기 사진

 

비아프라의 전쟁과 기근 사진

 

대공황 시절로 넘어가보자.

1936년 사진 속 여자는 서부 이주 농민들 중 하나로, 먹을 게 없어 차의 타이어를 팔아 생계를 이어갔고, 밭에서 얼어붙은 채소로 겨우 연명했다. 여자의 표정은 참담함과 역경을 이겨내려는 강렬한 눈빛이 공존한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때 공화당 병사가 죽는 사진은 그야말로 순간 포착이며, 기자가 생명을 담보한 근접촬영이다. 공산주의와 무정부주의, 사회민주주의가 혼란을 겪는 스페인의 상황이 한 장의 사진에 여러 이미지로 겹쳐진다.

1943년 나치 친위대는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에 있는 유대인 5000명을 강제 이송한다. 두 손을 든 아이의 얼굴엔 두려움과 슬픔이 가득하다. 아이 뒤쪽에 있는 군인의 표정은 여유롭고 기름지기까지 하다. 인간의 두 얼굴(인간의 내면으로 확장시킬 수도 있다.)이 하나의 사진에서 보편적 슬픔을 야기한다.

1945년 미국은 많은 희생자를 치르며 일본 이오지마에 섬에 성조기를 꽂는다. 성조기를 꽂는 병사는 사진 속엔 네 명이지만 실은 여섯 명이라고 한다. 그 중 세 명은 전투 중 전사했고 생존한 세 명의 군인도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1951년 한국전쟁에 관한 사진은 어느 면에선 지독한 팩트지만 어느 면에선 대단히 추상적인 인상을 준다. 폭격할 중요시설이 없는 산야에 마치 물고기 알처럼 까만 폭탄을 줄줄이 떨어뜨리는 모습은 잔인하고 무지하며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1961년 독일 베를린에는 장벽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때 동독 국경수비대원은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 장벽 대신 쳐진 철조망을 뛰어넘는다. 그 군인은 철조망을 밟는 순간 총을 버린다. 이 사진이 내포하는 의미는 여러 가지다. 그 중 하나는, 시대의 흐름이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한다는 메시아적 의미가 다분하다. 이 순간을 포착해서 찍는 기자의 뒷모습도 인상적이다.

1968년 베트남 사이공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진은 북베트남 관리를 즉결 처형하는 유명한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는다. 이 사진은 전쟁의 공포를 전하는 것은 물론, 삶과 죽음의 주인은 누구인가 허무를 말하기도 한다.

1986년 브라질 펠라다 산맥 금광의 광부들 사진은 자본과 노동의 극한을 보여준다. 인부 5만 명이 한 굴 안에서 금을 캐 수직으로 가파른 갱을 기어오르는 모습은 단테의 지옥편이나 중세 최후의 심판 이미지를 보는 듯하다.” “현기증 나는 각도는, 바빌로니아의 지구라트나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을 연상시키는 노동 조건을 그대로 보여준다.”(156)

비단 이 사진뿐이겠는가. 넥타이를 맨 노동자들 역시 가파른 각도를 기어오르는 노동의 노예신분인 것을 암시한다.

1991년 걸프전쟁의 이 사진은 한 정유 공장 노동자가 맨발로 사막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168)는 것으로 노동자의 참담함이 숭고하기까지 하다. 쿠웨이트의 석유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동의 이권 다툼이 얽히고설키어 있는데, “이라크군이 후퇴하면서 유전에 불을 질렀다. 7개월이 지난 1991106일에야 800개의 유정에 붙은 불이 완전히 꺼졌다.”고 한다. “걸프전쟁은 쿠웨이트의 주권 회복이 아니라, 페르시아 만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유지하고 그 지역의 풍부한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일으킨 것이다.” “미국은 국제 인권을 침해한 19건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168)

1994년 투치족 대학살 사진은, 뭐라 형용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준다.

저절로 벌어진 입, 초점을 잃은 눈은 순간적으로 발생한 일임을 말해준다. 두려움과 공포와 슬픔이 한꺼번에 뒤섞인, 초자연적인 일을 겪었을 때나 나올 표정이다.

이 어린 남자는 후투족으로, “만도에 찔린 상처 자국이 너무 깊어 꼭 머리를 3등분한 것처럼 보인다.” 후투족은 같은 언어를 쓰는 투치족을 살해하는 종족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이 남자는 투치족을 살해하는 일을 거부한 대가로 후두를 깊이 찔려 말을 못하게 되었다.”(172)

 

한 장의 사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유추하는 역사이자 문학이자 예술이자 고발이다. 사진 한 장이 던지는 의미와 파급효과는 대단하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익히 봐 온 사진들이 있어 제외하고 나름 고른 사진을 싣는다. 이 행위 역시 한 장의 사진을 찍는 작업과 비등하다고 여긴다. 오래 간직하고 싶어 적긴 하나 미진한 마음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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