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져간 자와 잃어버린 자

유리벙커 2011. 10. 2. 02:10

오늘 저녁은 무엇을 해먹을까 궁리하다 콩나물밥을 해먹기로 한다.

일단 마트로 간다.

여러 진열대를 살피다 고기 칸에 있는 닭고기 날개가 눈에 들어온다.

콩나물밥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던 터라, 닭고기 날개가 든 팩을 집는다.

닭고기 날개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나쁜 기름을 뺀 후,

간장 소스에 익히면 간편하고 먹기 좋은 요리가 된다.

콩나물밥과 윙 요리, 입안에 군침이 돈다.

이것저것 몇 개 더 집어 카트에 넣고 계산대로 온다.

 

내 앞엔 중년을 넘긴 남자가 계산을 하고 있다.

계산에 문제가 생겼는지 계산원이 내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나는 계산대 컨베이어벨트 위에 물건을 부려놓는다.

잠시 후, 계산원은 문제가 생긴 계산을 미룬 채, 내 물건을 바코드 스캐너로 찍는다.

그런데 당근 하나가 사고를 친다.

무게를 달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단, 계산을 끝낸 카트를 계산대 옆에다 놓고 당근을 가지고 다시 지하로 내려간다.

내려갈 때 나는 잊지 않고 계산원에게 말한다.

“이거 계산 끝난 건데 누가 가져가지 않을까요?”

내가 그렇게 질문한 건, 앞에서 남자와 문제가 생긴 계산 때문에 계산원이 뭘 알아보려는지,

컨베이어벨트 위에 있는 내 물건 뒤에다 ‘자리를 비운다’는 팻말을 놓았던 걸 보았기 때문이다.

계산원은 그럴 일 없다며 다녀오라고 한다.

나는 당근을 저울에 달아 가격표를 붙인 후 다시 계산대로 온다.

내가 계산했던 곳엔 계산원은 보이지 않고 남자 혼자 계산원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나는 옆 계산대로 가 당근을 계산하고 카트를 밀고 나온다.

 

저녁이 다 되어 윙 요리를 해먹을 요량으로 냉장고에서 양파며 생강, 마늘을 꺼낸다.

그러다 갑자기 윙을 냉장고에 넣었나 하는 생각이 난다.

마트에서 사 온 물건을 냉장고며 수납장에다 넣을 때 어쩐지 윙을 넣었다는 기억이 없다.

냉장고를 뒤진다.

없다.

계산서를 확인한다. 윙의 가격은 찍혀있다.

그렇다면 혹시 자동차 트렁크에다 흘린 것은 아닐까.

지하 주차장으로 가 자동차 트렁크를 뒤진다.

없다.

계산에 문제가 생겨 서 있던 남자가 떠오른다.

계산이 끝난 카트를 그 남자 옆에다 세워두었던 것이 마음에 걸린다.

 

눈으로 보지 않은 걸 의심하면 안 된다고 배웠다.

그래도 자꾸만 그 남자가 떠오른다.

간장소스를 만들려고 꺼내놓았던 재료를 다시 냉장고에 넣는다.

마음을 달래려 해도 약이 오른다.

콩나물밥과 윙 요리, 무척이나 어울리는 식단이었는데 갑자기 누군가에게 빼앗긴 느낌이다.

 

마트에서의 도난은 이번이 두 번째다.

카트에다 장바구니를 매달고 물건 두어 개를 넣은 후 다른 진열대를 기웃거린 적이 있다.

계산이 안 된 물건을 누가 가져가랴 싶어 카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 카트로 왔을 땐 카트가 통째로 사라지고 없었다.

주변을 살피고 매장 전체를 돌아다녀도 내가 끌었던 카트 비슷한 것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기가 막혔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장바구니, 그 안에 지갑이나 휴대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카트를 통째로 가져간 것.

 

나는 마트에서 물건을 산 후, 차에다 넣을 때 습관이 있다.

차와 아무리 가까운 곳에 카트 보관소가 있다 해도, 빈 카트를 가져다 놓을 땐 반드시 차문을 잠근다.

그러한 습관은 지갑이나 핸드백을 통째로 잃어버린 경험 때문이다.

핸드백을 잃어버렸을 때도 신기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집회가 끝나고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였다.

내가 선 바로 뒤 식탁에다 핸드백을 놓고, 식판에다 밥을 타 오고 보니 핸드백이 사라져버렸다.

그 시간은 참으로 짧았다.

일 분에도 못 미칠 시간이었는데 귀신도 그렇게 빠르지는 못할 것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핸드백을 가져갈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입구를 봐도 역시.

핸드백에는 집 열쇠며 현금과 카드, 주민등록증, 부조금이 든 봉투,

그 외에 어디에 사는지 누구인지 알만한 정보가 다 들어있었다.

할 수 없이 지인에게 만 원을 빌려 부랴부랴 집에 왔다.

그리곤 카드 분실 신고부터 하고, 집 키를 바꾸고,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 받았다.

 

남의 물건을 제 물건인 양 가져가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기 싫다.

몰래,

훔쳐서,

갖는다.....

그러한 비도덕적인 일이 가져가는 자에게 남다른 흥분이나 즐거움을 준다 해도 그것은 나쁜 짓이다.

왜냐고 물을 것도 없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물욕이나 빈곤 때문이라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간단하다.

세상엔 부자보다 물욕에 굶주린 자들이나 빈곤한 자들이 많다.

그 많은 자들이 결핍이라는 이유 때문에 모두가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면 세상은 어찌 되겠는가.

그러한 자들에게,

잃어버린 자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길 바라는 건 분명, 순진한 얘기 축에도 못 낄 것이다.

 

나는 오늘 이후, 닭 날개를 보면 오늘의 일이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더욱 조심할 게 뻔하다.

왜냐하면 잃어버리고 나면 기분이 나빠지니까.

기분이 나빠지지 않기 위해 가져간 자에게 선물했다고 마음을 달랜 적이 있다.

나보다 힘든 사람을 도왔다고 생각을 돌린 적도 있다.

그런데 그 생각보다는 언짢은 기분이 더 오래갔다.

그리고 경계심.

이런 마음, 못할 짓이다.

그러니 잃어버린 자가 더 나쁘다는 말에 일리가 있다.

훔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그것은 베풀음이 아니라 나쁜 마음을 먹게 한 동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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