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신앙인, 특히 기독교도들에겐 혐오의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신은 죽었다”라는 그 유명한 독설에 질려 한때 니체를 미워했다.
그러한 니체가 어느 순간 나를 끌어들이고야 만다.
그의 음성은 나직하나 분명하고, 분명하나 깊고, 깊으나 냉소적이고, 냉소적이나 따뜻하다.
니체의『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니체는 그토록 예민한 종교와 도덕, 신앙에 대해 일갈한다.
누구도 입에 올리기 꺼려했던 사실을, 누구도 쉽게 간파하지 못했던 사실을, 그는 폐부를 찌르면서, 그러나 수긍할 수밖에 없는 언어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의 아포리즘적 서술은 아포리즘 서술답게 간결한 문체에 깊은 우물, 혹은 높은 하늘을 담고 있다. 비유는 꼭 들어맞는 신발과도 같다.
그의 수많은 언어를 다 옮길 수는 없다. 옮길 만한 재주도, 실력도 없다.
다만,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니체, 그가 말한 소설을 쓰기 전의 자세에 대해 옮겨본다.
<예술가와 작가의 영혼에서>라는 챕터에서 그는 예술가를 ‘수공업의 성실성’이라는 제목을 달아 서술한다.
그런 이들은(예술가를 지칭함) 누구나 하나의 커다란 전체를 감히 만들려 하기보다는 그 전에 우선 부분을 완성시키는 것을 배우는, 저 정통적인 장인의 성실함을 갖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부분의 완성을 위해 시간을 썼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찬란한 전체의 효과보다는 작은 것, 부차적인 일을 훌륭히 마무리 짓는 일에 더 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예컨대 누군가가 어떻게 하면 훌륭한 소설가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은 쉽사리 주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실천에 있어서는 ‘내가 재능이 없다’고 말할 때 흔히 간과되곤 하는 특성을 전제해야 한다. 2페이지도 되지 않은, 그러면서도 그 속의 모든 낱말이 필연적인 그런 명확성을 지닌 소설 초고를 백 가지 정도만 만들어보라. 가장 압축되고도 가장 효과적인 일화 형식을 발견할 때까지 매일매일 일화를 써보라. 인간의 유형과 성격을 수집하고 선명히 묘사하는 일에 싫증을 내지 말라. 특히 다른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날카롭게 살펴보고 경청하면서 가능한 한 자주 이야기를 하고 또 이야기를 듣도록 해보라. 풍경화가와 의상디자이너가 여행하듯 여행을 해보라. 제대로 표현이 될 경우 예술적 교화를 가져올 것 같은 일체의 것을 각 학문으로부터 발췌해보라. 마지막으로 인간 행위의 동기를 숙고하고, 이 점에 있어 가르침을 줄 어떠한 지침도 무시하지 말며, 밤낮으로 이러한 것들을 수집해보라. 이런 여러 가지 훈련을 쌓으면서 십 년 혹은 이십 년을 지내보라. 그러나 그 이후로는 작업실에서 창작된 것이 거리의 광명 속으로 나간다 해도 괜찮을 것이다. --- 그러나 대부분은 어떻게 하는가? 그들은 부분에서가 아니라 전체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어쩌면 한번은 대성공을 거두어 주목을 끌고는, 그때부터 점점 좋지 않게 되는데, 당연한 일이다.
니체는 1844년 태어나 1900년에 사망했다.
그러니까 겨우 56년을 살았다는 말이 된다.
짧다면 짧은 그 생애 동안 그는 기존의 전통적 사고방식을 뒤엎은, 혹은 파헤쳐 새롭게 정리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 나는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든다.
그리고 두 손을 들게 한 그의 철학에 깊이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더불어 니체, 그가 만약 지금의 내 소설을 읽는다면 어떤 평을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 니체의 소설에 대한 생각을 요약해본다.
1, 그 시대에 만족한 글은 다음 시대에 거부당한다. - 즉, 시류에 합당하는 글은 생명력이 약하는 뜻. 다시 말해 고전으로 남을 만한 소설을 쓰라는 뜻. 모두 같은 소리를 내면 훌륭한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데 “창조는 파괴를 전제한다.”는 말로 기존의 틀에 박힌 사고를 깨라는 말.
2, 건강한 인상을 줘야 할 작품은 3/4의 힘만 사용해야 한다. - 이것은 여유를 남기라는 뜻.
3, 이것일까 저것일까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 이 점에 있어 니체는 로렌스 스턴을 우수한 작가로 여긴다.(로렌스 스턴의 대표작은 <트리스트럼 샌디>)
4, 훌륭한 작가는 자신의 문체를 가지고 있다. - 니체는 다작을 권한다. 그렇게 많이 쓰다 보면 자신의 문체가 생기고, 옥석을 가릴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문체는 아름다움이 끔찍한 것을 이겨냈을 때 나타난다.
5, 간결하게 쓰라. - 간결하게 말해진 그 무엇은, 오랫동안 생각된 것의 수확이고 결실일 수 있다.
6, 예술가는 자기 작품에 대해 말하지 말라.- 작품으로 말하지, 말로 설명하지 말라는 뜻.
7, 정교한 어법에 맞춰 글을 쓰되, 일탈을 즐려라.
8, 양서를 읽어라. - 논리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가장 혐오스러운 무례함을 가진 자들, 즉 교만한 척척 박사와 정신이 혼란스러운 사람들이 쓴 책은 결코 읽지 마라.
9, 소박하고 유익하게 글을 쓰라 - 서로 교통할 수 있는 글을 쓰라.
10, 최고의 진리처럼 말하는 것이 제일 위험하다.
11, 향기나는 글을 쓰라. - 모든 단어에는 자신의 냄새가 있다. 냄새의 조화와 부조화라는 것이 있듯, 단어 사이에도 이러한 조화와 부조화가 있다.
12, 책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지 마라. 니체의 맹세!- 뜻밖에 책이 되어버린 것만을 읽고 싶다! 책을 만들고자 의도했던 것이 느껴지는 저자의 책은 더 이상 읽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 사상이 뜻밖에 책이 되어버린 것만을 읽고 싶을 뿐이다.
13, 고통은 극복해 내고, 글은 진지하게 쓰라.
14, 고전을 읽으라.
15, 문체를 선택할 때 주의할 점 - 시대를 따를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문체를 쓸 것) 문체가 부패하는 원인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하지 않고 과장할 때 문체는 부패한다.
16, 너무 무모한 비교는 삼가라.
17, 여유 있는 작가가 되라. - 훌륭한 작가가 가지게 되는 궁극적인 것은 풍요로움이다.
18,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글을 쓸 때 조심하라.
19, 지친 상태에서는 글을 쓰지 마라.
20, 훌륭한 문체는 가장 인간적인 것을 표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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