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라는 말이 느리게 느껴질 정도로 속도 시대다.
느긋함은 아무나 부릴 수 없는 가치가 됐다.
그렇게 된 중요 원인의 하나는 전자기기에 있다.
전자기기는 속도, 속도가 아니면 고물이 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전자기기의 노예로 전락했다.
전자기기는 '행복한 전락'이라는 착각마저 칩에 붙여 우리에게 왔다.
우리는 그렇게 '행복한 전락'에 사정 없이 전신을 던진다.
자, 보라.
우리는 잠시라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분리불안증에 시달린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투영시킨다.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사진을 올리고, 몇 사람이 호응을 하는지,
숫자를 보며 불안하고 허허로운 '나'를 위로한다.
생각과 고민보다 속도, 속도에 따라가느라 단순해진다.
길을 건너며 혹은 운전 중에도 스마트폰의 신호음에 귀를 기울인다.
중독이 별 거인가?
오늘 파마를 하러 미용실에 왔다.
앞 손님이 있어 기다리는 사이, 나는 잡지를 들추다 스마트폰을 터치하다 한다.
어느 새 나도 스마트폰 중독자가 되어 가고 있다.
기다림이 생각 보다 길다.
스마트폰으로 뒤져 볼 건 다 뒤져보니 할 일이 없다.
문득, 스마트폰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일종의 실험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그렇다.
컴퓨터로만 글과 사진을 올리던 것을, 이렇게 공간을 이동해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내게 알리고 싶은 욕구다.
작은 화면에 나온 키보드로 글자를 친다.
컴퓨터와는 달리 살짝 터지만 잘못해도 다른 글자가 나온다.
신경을 집중한다.
중화제를 바를 시간이다.
잠시 스마트폰을 놓고 중화제를 바른다.
그리고 다시 스마트폰을 들고 내 모습을 찍는다.
내가 나를 찍다니.... 참으로 낯설고 겸연쩍다.
예전엔 상상도 못 할 일이 지금은 놀라움도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벌어진다.
이래도 되는 걸까....
글을 마저 쓰고 사진을 올린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아마도 이 순간의 미용실과 나를 떠올리라.
미용실에 있는 내가, 집에서 컴퓨터로 작업하던 바로 그 '나'가 되던 순간 이동을,
그래서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함께 느꼈던 나를,
나는 부디 기억하길 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