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 시인의 『극단적 흰빛』은 제목부터가 대단히 극단적이다.
‘극단적’이라는 단어도 극단적인데 ‘흰빛’도 극단적이다.
극단과 극단이 나란하게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과연 극단이 치닫는 세계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
극단적‘인’도 아닌 그저 ‘극단적’에 매료되었다.
‘흰빛’ 또한 ‘흰색’과는 달리 가시적이지 않은데
극단과 흰빛은 어떤 모습으로 조화를 이룰까.
표제작 「극단적 흰빛」은 한 공간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병치시킨다.
시의 화자는 그 두 세계에 머물며, 들숨과 날숨을 쉬듯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경험한다.
“깜깜해서야 집으로 왔”는데, “딸깍 소리가 무서워 불을 켜지 않았”고,
“주방이 보이고 아침 먹던 숟가락이 보였”고, 그때 “실감 나지 않은 빛이 생겼다”
“엄마, 하고 부르려다 그만두었”고, “기다렸던 전화기가 조잘조잘 울려서 거실 등을 켰”고, 그때 “극단적 어둠들이 차츰차츰 흩어졌다”
참으로 극단적인 그리움 혹은 외로움이 아닐 수 없다.
사연은 다르지만 때론 우리가 겪는 극단이기도 하다.
고철 시인의 시/시어의 매력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이다.
마지막 연에는 반전과도 같은, 혹은 아포리즘과도 같은 문장이 여지없이 똬리를 튼다.
그저 빙긋 미소 짓게 하는가 하면, 푸핫, 허를 찔리는 듯한 웃음도 준다.
「도둑질하고 싶다」라는 제목 역시 극단적이다.
가장 근본적인, 그러나 저급하며, 금기시 되는 언어를 이토록 성큼 쓸 수 있나,
고철 시인의 뇌가(사상이나 인식이 아닌 진짜 뇌의 구조다) 궁금했다.
시의 화자는
“연민 같은 거 생기지 않게 도둑질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 도둑질은 “너를 훔친 나처럼 세상 도처에 나가서 섞이고 싶은 것들 훔치고 싶”단다.
마지막 연엔 도둑질의 능동성이 수동성을 ‘도둑질’한다.
“그도 저도 아닐 때 누가 나를 훔쳐갔으면 좋겠다”
수동적 도둑질이 능동적 도둑질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마음이 찡하고 짠한 도둑질이다.
어느 시인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난다.
“내가 아는 어느 시인이 그러더라. 하도 외로우니까 집에 도둑이라도 들어왔으면 좋겠대.”
이러저러하게 나름의 느낌을 적어보지만,
고철 시인의 시는 이러하다고 프레임에 가두기엔 무리다.
표4를 쓴 김미옥 작가의 말에 그저 숟가락을 얹을 뿐이다.
“잘 읽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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