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진 교수님이 쓴 『브런치 인문학』이 출판되었다는 걸 알았다.
북길드 출판사 배경완 대표의 프사를 통해서다.
마음이 달떴다.
부랴부랴 인터넷 서점에 주문을 넣었다.
책이 오길 기다리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스크린으로 떠오른다.
2010년을 전후해서 나와 배 대표는 강대진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그때 우리는 소위 벽돌책이라 일컫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아르고 호 이야기』를 통독하며 꽤나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강의가 끝나면 강대진 교수님과 우리는 뒤풀이를 했다.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해 안주만 축내고, 배 대표는 그 특유의 입담으로 우리를 웃겼다.
몇 년 후, 배 대표는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도로 터전을 옮겼다.
연고도 없이 제주도로 가는 건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다.
제주도로 간 어느 날 배 대표는 내게 협업을 제안했다.
협업의 내용은 정치인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서 책자로 만드는 일이었다.
이러저러하게 일정을 짜고 숙소까지 알아보는 단계까지 갔다.
헌데 내 쪽에서 사정이 생겨 협업은 무산되었다.
사정이라는 것은, 몸 상태가 안 좋아진 거였다.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했는데, 그 주사가 내겐 과했는지 거의 2주 동안 몸살을 앓았다.
여러 번에 걸친 인터뷰를 하자면 체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배 대표에겐 몸이 안 좋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다른 핑계를 댔던 듯하다.
(나한테 체력이 달린다는 건 일종의 열등감이기도 하다.)
배 대표는 혼자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고, 나는 배 대표가 보내온 파일을 조금 봐 주는 정도였다.
배 대표는 기어코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인터뷰를 마치고 정리를 해내었다.
얼마 후 인터뷰한 책자가 나왔다.
인터뷰를 요청한 분은 그 해인지 다음 해인지 국회의원이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곤 국회의원이다.
강대진 교수님과의 에피소드도 새롭다.
강대진 교수님이 『아르고 호 이야기』를 출간했을 때다.
그 책을 사서 사인을 받는데 교수님은
“김정주 선생님, 노벨상을 타는 작가가 되세요, 허허허~”하며,
엄청나게 무거운 덕담을 주셨다.
나는 어쩔 줄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동대구역에서 마주친 일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교수님은 대구에서 강의를 마치고 기차를 기다리시던 중이고,
나는 문병을 갔다 『토잉카와 두 개의 옆문』 출판기념회가 잡혀 급히 서울로 가던 중이었다.
승강장에 서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나와 강대진 교수님은 뭐에 끌리기라도 한 듯 고개를 돌려 마주보게 되었다.
그때의 반가움이라니!
생각해보니, 책은 지금과 추억을 연결해주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뼈와 뼈를 이어주는 관절이다.
그밖에도 여러 할 말이 있지만 사족이 될 터라 여기까지만 한다.
기다리던 책이 왔다.
책장을 넘겨본다.
강대진 교수님의 음성이 활자를 통해 나온다.
배 대표의 꼼꼼한 손길도 여전히 묻어나온다.
대장암 수술과 퇴원을 반복하며,
극심한 통증 중에도 기어이 출판을 해 낸 배 대표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래, 그렇다.
추억은 달아나는 게 아니다.
항암제보다 효과가 있는 것 중 하나가 좋은 추억이기도 할 것이다.
강대진 교수님과 배 대표에게 허리를 접어 인사한다.
“고맙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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