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냥이를 길러?

유리벙커 2011. 6. 10. 01:36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을 때가 많아져간다.

발가락에 쥐가 나서이다.

요즘 들어 발에 쥐가 나는 게 빈번해진다.

발가락에 조금 힘을 준다 싶으면 영락없이 다리부터 뻑뻑해 오면서 발가락이 꼬인다.

통증만 아니라면 재미로 볼만도 하다.

두 개의 발가락이 자석에 끌리기라도 한 양 들러붙으니 무슨 마술쇼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니 문제다.

그냥 꼬이는 대로 놔두면 종아리까지 올라온다.

무지근하게 시작한 통증은 점점 강도를 더하고 종아리의 힘줄까지 터질 듯한 느낌으로 굳게 한다.

그 느낌은 몹시 불쾌하다. 아니, 무섭다. 

쥐가 난 발가락을 심장 쪽으로 꺾어보기도 하고 주물러보기도 하지만 한 번 꼬인 발가락은

쉬이 풀어지지 않는다.

이 방법 저 방법을 동원한 결과 제일 효과 있는 방법은 더운물에 발을 담그는 것.

윽윽, 신음을 토해내며 발가락을 달래노라면 "고양이를 길러봐, 그 쥐 잡게.”하며

농을 던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 이런 소리를 들으며 킬킬대지만 웃는 것처럼 태평한 건 아니다.

시내를 걷고 있을 때, 혹은 지인들과 놀러갔을 때, 이 쥐라는 놈은 급습을 한다.

그때의 당혹감을 무어라 말할까.

창피고 뭐고 그저 구두를 벗고 발을 주무른다. 

그렇다고 한 번 꼬인 발가락이 풀어지는 건 아니다.

절뚝이며 걷거나 옆에 있는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쉴 자리를 찾는다.

그러니 오래 걷거나 서 있을 일이 생기면 겁부터 나고 구두 대신 운동화를 챙긴다.

 


어렸을 때, 고모할머니 댁에 놀러간 적이 있다.

한밤중, 갑자기 고모할머니 방에서 비명이 났다.

그것도 하루가 아니라 매일 밤마다 그랬다.  

고모할머니 방으로 뛰어갔을 때 할머니는 가슴을 움켜잡고는 마구 소리를 질렀다.

쥐가 났다고, 아프다고, 온몸을 주물러 달라고.

그때의 비명과 할머니의 고통, 눈물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의 쥐는 심장 근처까지 온 듯했다.

그때 냥이가 있었다면 할머니의 쥐를 잡았을까? 

더운물에 발을 담근 채 여유만만으로 냥이까지 들먹이며 생각하는 건

지금은 집이고 더운물이 있어서이다.

시내 한복판에서 혹은 행사장에 있을 때 더운물이 간절했던 기억이 새롭다.

오늘, “고양이를 길러봐”라는 농담을 떠올리며 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그래, 어쩌면 냥이는 이런 쥐도 잡을 수 있을지 몰라. 왜? 냥이니까.

냥이의 예리한 눈, 민첩한 몸놀림, 날카로운 발톱, 그것은 쥐를 사냥하기엔 그만이다.

그러니 냥이를 유혹해 보는 거다.

내 몸 어느 신경의 줄기에다 냥이의 터를 마련해 놓으면 쥐를 잡을지 어찌 알겠는가.

 

오래 전, 갓 태어난 냥이를 분양 받아온 적이 있다.

냥이의 이름을 미미라 짓고 길렀는데 녀석은 사냥할 만큼 성장하자 쥐를 잡아다 내 슬리퍼 속에다 넣었다. 

그때 나는 소리를 지르며 미미를 야단쳤지만 그게 주인에게 준 선물이라는 건 나중에 야 알았다.

그때의 미미가 보고 싶다.

내게 쥐를 잡아다 선물한 그 선물이, 더운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지금의 내겐 더없는 선물이 될 터인 즉.       

 

 

 

(산길 초입에서 만난 어린 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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