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중 『녹턴』과 『남아 있는 나날』을 읽었는데 이번엔 장편소설 『나를 보내지 마』를 읽었다. 한마디로 최고의 작품이다. 이렇게 섬세하고 작품성이 뛰어난 소설도 드물다. 시종 일관 잔잔한 톤이지만 핵심을 향해 나아가는 그 꾸준함과 성실함은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고도의 경지다. 글을 쓰다보면 머릿속에 든 내러티브나 표현이 자꾸 보채는 까닭에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기 쉬운데, 가즈오 이시구로는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 하나하나 펜 끝으로 세밀화를 그리듯 쓴다.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글 전체가 디테일 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점은 내공이 탄탄하지 않으면, 자신을 통제할 능력이 없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힘이다. 그런 힘의 또 한 부분은, 화자(주인공 ‘나’)와 청자(독자)와의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