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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선언>> 독자 서평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 내 책을 읽고 감상문이나 서평을 쓴 것을 볼 때마다 나는 감격한다.특히 송광택 목사님이 쓰신 『은밀한 선언』은 정성이 가득하다. 송 목사님은 독서모임을 주관하시는 분이다. 내 소설은 종교와는 거리를 둔 소설인데 목사님께서 좋은 서평을 남겨주셔서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송광택 목사님이 쓰신 『은밀한 선언』의 서평을 옮겨 본다. 김정주 작가의 장편소설 『은밀한 선언』은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각 장에서 주인공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드러낸다. ‘출판사 서평’에 따르면 이 소설은 ‘드러내고 싶지만 감추고 싶은, 숨기고 싶지만 알리고 싶은, 욕망을 억압하는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은밀한 선언』은 여러 명의 캐릭터들을 통해 ‘불완전하고 불안전한‘ 인생살이를 들여다본다...

<<바다 건너 샌들>> 독자 감상문2

정탄 선생님께서 김정주 소설집 『바다 건너 샌들』을 읽고 감상문을 페이스북에 올리셨다.책을 읽는다는 것은 열정이고, 감상문을 쓴다는 것은 책에 대한 애정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그 사실을 알기에 정탄 선생님의 감상문에 고개 숙여 깊이 감사를 드린다.(특히, 샌들에 관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점을 써주셔서 또 하나를 배운다.) ※ 강자, 승자는 패자, 약자를 소 닭 보듯 대하지 말라 “엄마, 난 개야. 개가 되기로 했어. 날 용서하지 말고 버려줘요.” 아들의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나도 살고 싶어.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어. 우리집처럼 말고 다른 집처럼, 보통의 집처럼 살고 싶어졌어. 아버지가 있고 고상하게 취미 생활도 하는 엄마가 있는 그런 집 말이야. 걔네*가 그런 집이야.” *걔네; ‘그 아이..

나의 소설 2025.05.20

<<바다 건너 샌들>> 독자 감상문1.

평론가이자 소설가인 심영의 선생님이 2022년도에 발표한 내 작품집『바다 건너 샌들』의 감상문을 페이스북에 올리셨다.심 선생님은 표제작 「바다 건너 샌들」에서 주인공 숙을 보면서 나를 떠올리셨던 듯하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숙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름 없는 작가지만 꾸준히 글을 쓰는 내가 같아 보였나보다.작가는 작가의 심정을 잘 안다.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진심인지 가식인지, 허풍인지 엄살인지를 누구보다 디테일하게 안다. 나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 앞에, 마음이 숙여지고 감사함이 뭉클 올라온다. * 심영의 선생님의 감상문을 올려본다. 김정주 소설집 『바다 건너 샌들』(소명출판, 2022)의 표제작 「바다 건너 샌들」의 문장은 더 없이 단정하고 맑고 투명하지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

나의 소설 2025.05.19

책은 관절

강대진 교수님이 쓴 『브런치 인문학』이 출판되었다는 걸 알았다.북길드 출판사 배경완 대표의 프사를 통해서다.마음이 달떴다. 부랴부랴 인터넷 서점에 주문을 넣었다.책이 오길 기다리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스크린으로 떠오른다. 2010년을 전후해서 나와 배 대표는 강대진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그때 우리는 소위 벽돌책이라 일컫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아르고 호 이야기』를 통독하며 꽤나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강의가 끝나면 강대진 교수님과 우리는 뒤풀이를 했다.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해 안주만 축내고, 배 대표는 그 특유의 입담으로 우리를 웃겼다. 몇 년 후, 배 대표는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도로 터전을 옮겼다.연고도 없이 제주도로 가는 건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다. 제주도로 간 어느 날 배..

나의 이야기 2025.02.25

굿바이 거제

거제살이 4년을 마치고 살던 집으로 갑니다.굳이 거제를 택해 몸을 부린 건, 연고가 없고 풍경이 좋아서였습니다. 거제는 대단히 매력적인 선택지였습니다. 젊어서는 살고 싶은 데를 정해 이사도 참 많이 다녔지만지금은 그런 낭만적인 현실이 아닙니다.이사에 따른 비용지불이 꽤 되고, 큰 것부터 자질구레한 모든 것을 예약해야만 이사가 가능합니다. 거제에선 세입자로 살고, 살던 집엔 세입자가 있습니다.거제 집과 살던 집의 이삿날을 맞추기가 꽤나 어렵습니다. 신경이 과부하를 일으켜 체력 소모가 장난 아닙니다.오래 된 친구는 말합니다.“거제로 간 거, 후회하지 않니?”후회라니요, 천만에요.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고 대답합니다. 바다와 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집을 구한 건 행운입니다.하루 날을 잡아 거제에 와서 집을 보..

나의 이야기 2025.02.18

<<극단적 흰빛>>

고철 시인의 『극단적 흰빛』은 제목부터가 대단히 극단적이다. ‘극단적’이라는 단어도 극단적인데 ‘흰빛’도 극단적이다. 극단과 극단이 나란하게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과연 극단이 치닫는 세계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극단적‘인’도 아닌 그저 ‘극단적’에 매료되었다.‘흰빛’ 또한 ‘흰색’과는 달리 가시적이지 않은데 극단과 흰빛은 어떤 모습으로 조화를 이룰까.  표제작 「극단적 흰빛」은 한 공간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병치시킨다. 시의 화자는 그 두 세계에 머물며, 들숨과 날숨을 쉬듯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경험한다. “깜깜해서야 집으로 왔”는데, “딸깍 소리가 무서워 불을 켜지 않았”고, “주방이 보이고 아침 먹던 숟가락이 보였”고, 그때 “실감 나지 않은 빛이 생겼다”“엄마, ..

탈골

탈골  김정주  모녀는 방파제 입구에 선다. 뜨뜻한 기에 찬 기 섞인 바람이 분다. 굴 폐각이 썩는 냄새, 주변에 널린 그물에서 스멀스멀 퍼지는 냄새, 물고기와 해초들의 비릿하며 미끈거리는 냄새가 습하게 달라붙는다. 늘그막 한 딸이 노모의 팔을 잡고 방파제로 올라간다. 톡톡, 톡톡, 지팡이 두드리는 소리가 밤바다로 녹아든다. 모녀는 말없이 방파제 끝으로 간다. 딸이 방파제 끝에다 돗자리를 편다. “엄마, 바로 앞이 바다예요. 조심해요.” 딸은 노모를 돗자리에 앉힌 후 그 옆에 선다. 밤하늘은 밤바다로 너르다. 둥근달이 구름에 가려 반쯤 드러나다 온전히 드러나다 한다. 바다 저 편엔 둥글고 허연 양식장 부표가 줄에 매달려 둥둥 떠 있다. 그 뒤론 무인 등대에서 내쏘는 빛이 반짝반짝 터진다. 노모는 그 ..

바깥 풍경

바깥 풍경  김정주   그는 불어와 철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에선 모 대학에서 미학을 강의한다. 대학 외 여러 인문학 기관에선 철학 이론을 바탕으로 문학 강의를 한다.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교수로 알고 있다. 그는 멜랑콜리하며 센티멘털하다. 그의 형은 스물 몇인가에 죽었다. 그 일이 그를 멜랑콜리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혹은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쓴 산문집에는 형의 이야기가 몇 꼭지 나오고, 여자 이야기는 수십 꼭지에 달한다. 그를 콕 집어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강의할 때는 래디컬 한 반면, 사적인 자리에선 안개에 싸인 듯 몽환적이며 말수가 적다. 그가 홀로 앉아 조용히 썼을 법한 산문집에는 한 여자일 수도 있고..

화농

화농    김정주    덤프트럭이 다가온다. 거대한 몸통이 바닥에 깔린 센서를 밟으며 톨게이트로 진입한다. 덤프트럭이 속도를 늦추더니 부스 앞에서 살짝 경적을 울린다. 윤희는 부스 창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트럭 기사는 새까만 선글라스를 치켜 올리더니 한쪽 눈을 찡끗한다. “교대시간은 언제? 이쁘지도 않으면서 이쁜 척. 그만 튕겨.” 윤희는 픽 웃는다. “운전 조심하세요.” 트럭 기사가 상체를 건들대며 선글라스를 내려 쓴다. 트럭 기사는 발권기 삼 단에서 통행권을 뽑더니 휭 가버린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어마어마한 몸체, 심장까지 궁궁 파고드는 소리, 영락없는 재우. 재우를 만난 건 신의 은총일까 장난일까. 덤프트럭의 쇠 덮개 틈에서 푸르르 흙먼지가 날리며 잠시 봄을 가..

관광객 아닌 관광객

거제도에서 산 지 4년이 다 돼 간다.문서상 거제도 주민이긴 한데 정서상 거제도 주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 점은 인정한다. 특히 재래시장에 가면 나는 그저 관광객일 뿐이다. 재래시장에서 생선을 살 때면 나는 생물인지 해동인지 묻는 버릇이 있다.마트에는 생물과 해동을 정확하게 쓴 라벨이 붙어 있지만 재래시장 좌판엔 싱싱해 보여도 해동일 때가 종종 있어서다. 한 번은 통영 어시장에서 제법 큰 병어가 있어서 생물인지 해동인지 물었다.당차게 생긴 생선가게 여주인은, 당차게도 생물이라고 대답했다.집에 와 구워먹는데 냄새도 살짝 나고 생선살도 보드랍지 않고 단단했다.이런 삽화를 굳이 관광객으로 보느냐 마느냐로 엮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거제나 통영이 관광도시다 보니, 뜨내기 관광객쯤으로 봤을 일을 얘기하는 거..

나의 이야기 2024.12.30

퓰리처상

사진처럼 즉각적이며, 강렬하며, 감각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매체도 드물 것이다. 『퓰리처상 사진』은 사진의 백미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책이다. 332쪽의 두꺼운 이 책에는 사진/사진기의 발전과 그에 따른 역사적 맥락이 간단명료하게 적혀 있다. 또한 사진기자들의 열정과 애환, 순간의 포착을 위해 생명을 건 스토리도 간략하게, 그러나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재난현장의 사진을 볼 때 충격을 받으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한다. “저 순간에 사진이나 찍고 있었다니” 혹은 “사진 찍을 때 한 사람이라도 구하지” 그러나 ‘다만’ 사진 한 장이 아니다.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로 전송되면 그 파급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예컨대 반전시위를 이끌어 내기도 하고, 인종차별을 규탄하기도 하고, 그로 인..

<<세상을 바꾼 사진>>

사진의 발명은 가히 인간사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사진은 순간을 정지시킨 생생하고도 확고부동한 증명서다. (사진을 조작하는 기술이 나오기 전에나 통할 얘기지만, 지금도 이 말은 사실이다.)  『세상을 바꾼 사진』엔 그야말로 세기적 혼란기라고 할 수 있는 1900년대 사진이 주를 이룬다. 사진에는 권력과 희생, 노동 착취와 전쟁에 따른 폭력의 이미지가 충격적으로 나온다. 1908년 미국 아동의 노동 현장의 사진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이륙에 관한 사진과 대조적이다. 1910년대로 넘어가면 멕시코 혁명의 사진이, 1915년엔 오스만제국이 아르메니아인을 대학살한 사진이, 1916년엔 독일이 프랑스 베르됭시를 대대적으로 공격한 사진이 실려 있다. 실로 가공할 참사는 100년이 넘는 시간을 넘어 당시를 증언한다..

합천박물관과 해인사를 다녀오다

비실하던 몸이 봄과 함께 깨어납니다. 거제로 올 때만해도 이러저러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계획이라기보다 잘 놀고 잘 쓰자는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제 3년차가 됩니다. 몸이 부대끼는 날이 많아집니다. 한동안 집에 쿡 박혀있었습니다. 기운을 차리자. 이번엔 기어코 합천 해인사를 가보자. 먼저 합천박물관으로 갑니다. 박물관 입구엔 링과 화살이 놀이로 던져보라고 놓여 있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동해 링도 던져보고 화살도 던져봅니다. 링 열 개, 화살 열 개를 던졌지만 단 한 개도 넣지 못했습니다. 제기도 있어 휙 던졌다 발로 차봅니다. 다 꽝입니다. 꽝은 꽝인데 어째 이리 웃음이 나오는지요. 박물관을 나와 위로 올라갑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가야 시대의 다라국 옥전고분군이 보입니다. 이처럼 ..

나의 이야기 2024.04.13

화농

2023년 겨울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을 소개합니다. 화농 김정주 덤프트럭이 다가온다. 거대한 몸통이 바닥에 깔린 센서를 밟으며 톨게이트로 진입한다. 덤프트럭이 속도를 늦추더니 부스 앞에서 살짝 경적을 울린다. 윤희는 부스 창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트럭 기사는 새까만 선글라스를 치켜 올리더니 한쪽 눈을 찡끗한다. “교대시간은 언제? 이쁘지도 않으면서 이쁜 척. 그만 튕겨.” 윤희는 픽 웃는다. “운전 조심하세요.” 트럭 기사가 상체를 건들대며 선글라스를 내려 쓴다. 트럭 기사는 발권기 삼 단에서 통행권을 뽑더니 휭 가버린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어마어마한 몸체, 심장까지 궁궁 파고드는 소리, 영락없는 재우. 재우를 만난 건 신의 은총일까 장난일까. 덤프트럭의 쇠 덮개 틈에서 푸..

나의 소설 2024.04.02

해변 너머 저기

간만에 해변으로 나왔습니다. 봄바람이 제법 셉니다. 괜히 나왔나 발걸음이 머뭇댑니다. 고집 좀 부리자 마음을 돌립니다. 바다는 언제 봐도 좋습니다. 봄바람은 사람 마음처럼 변덕을 부리느라 부산합니다. 바닷물은 바람이 부는 대로 울렁울렁 무늬를 만들고 있습니다. 후드 티의 모자로 머리를 덮습니다. 하늘은 구름을 띄우고 푸르르하다 흐리흐리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바다색은 항상 하늘과 짝을 이룹니다. 하늘이 파라면 바다도 파랗고, 하늘이 흐리면 바다도 흐립니다. 오늘은 많이 걷기보다 바다를 실컷 보려고 나온 터라, 바다를 향한 벤치에 앉습니다.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맥락 없이 떠오릅니다. 생각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하나의 생각을 밀어내고 새로운 생각을 자꾸만 던집니다. 며칠 전엔 다 쓴 장편소설을 남편..

나의 이야기 2024.04.02

조금은 슬퍼도 살아볼만 한 집

지인 두 분이 있습니다. 한 분은 부활을 믿고 한 분은 윤회를 믿습니다. 그 분들과 통화를 하다 보면 간혹 종교 얘기가 나옵니다. 신앙과 종교에 관해 생각하게 된 계기입니다. 신앙 혹은 종교에 관한 발언은 분쟁을 일으키기에 딱 좋은 소재입니다. 금기의 영역에 포함시켜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나름 떠오른 생각에 입을 뗍니다. 먼저, 부활에 대한 생각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삼일 후, 예수는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의미심장하게도, 거기까지입니다. 예수가 부활 후 어떤 일에 종사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결혼은 했는지, 자식은 낳았는지, 예수에 관한 구체적인 행적은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예수는 신이 됩니다. 신은, 사람들처럼 일자리에 종사하거나 무엇을 먹거나 배..

나의 이야기 2024.02.18

탈골

탈골 모녀는 방파제 입구에 선다. 뜨뜻한 기에 찬 기 섞인 바람이 분다. 굴 폐각이 썩는 냄새, 주변에 널린 그물에서 스멀스멀 퍼지는 냄새, 물고기와 해초들의 비릿하며 미끈거리는 냄새가 습하게 달라붙는다. 늘그막 한 딸이 노모의 팔을 잡고 방파제로 올라간다. 톡톡, 톡톡, 지팡이 두드리는 소리가 밤바다로 녹아든다. 모녀는 말없이 방파제 끝으로 간다. 딸이 방파제 끝에다 돗자리를 편다. “엄마, 바로 앞이 바다예요. 조심해요.” 딸은 노모를 돗자리에 앉힌 후 그 옆에 선다. 밤하늘은 밤바다로 너르다. 둥근달이 구름에 가려 반쯤 드러나다 온전히 드러나다 한다. 바다 저 편엔 둥글고 허연 양식장 부표가 줄에 매달려 둥둥 떠 있다. 그 뒤론 무인 등대에서 내쏘는 빛이 반짝반짝 터진다. 노모는 그 무엇도 보이지 ..

바깥 풍경

바깥 풍경 그는 불어와 철학을 공부했으며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에선 모 대학에서 미학을 강의한다. 대학 외 여러 인문학 기관에선 철학 이론을 바탕으로 문학 강의를 한다.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교수로 알고 있다. 그는 멜랑콜리하며 센티멘털하다. 그의 형은 스물 몇인가에 죽었다. 그 일이 그를 멜랑콜리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혹은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쓴 산문집에는 형의 이야기가 몇 꼭지 나오고, 여자 이야기는 수십 꼭지에 달한다. 그를 콕 집어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하다. 강의할 때는 래디컬 한 반면, 사적인 자리에선 안개에 싸인 듯 몽환적이며 말수가 적다. 그가 홀로 앉아 조용히 썼을 법한 산문집에는 한 여자일 수도 있고 다수의 여자일 ..

동시집 『넉 점 반』

친구 추천으로 윤석중의 동시집 『넉 점 반』을 도서관에서 빌렸습니다. 『넉 점 반』을 여는 순간 가슴에 지진이 납니다. 주인공 아가의 그림은 그냥, 앙~ 깨물어먹고 싶다, 그게 전부입니다. 반복, 반복, 앙~ 깨물어먹고 싶다,입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눈이 그림에 박혀 나올 줄 모릅니다. 아가는 엄마 심부름을 갑니다. 지금 몇 시나 됐나 물어보는 심부름입니다. 아가는 구복상회라는 가겟집으로 가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묻습니다. 돋보기를 쓴 가겟집 할아버지는 “넉 점 반이다” 알려줍니다. 아가는 시간을 잊지 않으려 “넉 점 반” “넉 점 반”을 외우며 집으로 갑니다. 가는 도중 아가는 개미가 노는 것도 보고, 닭이 물을 먹는 것도 보고, 잠자리 떼가 나는 것도 보고, 꽃이 핀 데..

『카메라루시다』에서 문득

롤랑 바르트의 저 유명한 『카메라루시다』를 읽고 싶었던 건 오래 전이다. 여러 번 기회를 놓친 끝에 얼마 전에야 읽었다. 일단 책을 사려고 알라딘에 들어갔지만 절판된 지는 오래. 중고 가격을 보니 몇 달 전만 해도 3만 원이 넘었는데 한 달 후엔 5만 원이 넘었다. 어제 보니 69,900원을 찍는다. 그만큼 소장 가치가 있다는 말이겠다. 일단 도서관에서 빌리기로 한다. 도서관에 갔지만 없다. 사서에게 말하니, 창원에 있는 도서관에는 있으니 가져다 놓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일주일 만에 『카메라루시다』를 손에 넣는다. 가슴이 두근두근. 유감인 것은, 내 책이 아니기에 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책에 메모를 끄적일 수 없다는 점이다. 해서, 메모 노트를 옆에 두고 좋은 대목을 써 두기로 한다. 책..

나의 이야기 2023.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