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은여우가 말을 걸다 얼마 전, 이은봉 시인으로부터 시집 『봄바람, 은여우』를 받았다. 봄바람, 은여우라니, 뭐 이렇게 어여쁜 제목이 있을까. 아닌 게 아니라 <봄바람, 은여우>에는 깍쟁이 은여우가 나온다. “발톱을 세워 가슴 한쪽 칵, 할퀴어대며 꼬라지를 부리는 은여우”가 제법 끼를 부린다. 그뿐.. 나의 소설/독서감상문 2016.07.12
숲이 있는 거울 우리가 제일 많이 보는 것은 거울. 거울은 나이를 먹지 않지. 십 년 전에 산 거울도, 어제 산 거울도, 거울엔 나이가 들어 있지 않지. 그래서 우리는 수시로 거울을 봐도 내가 언제 이렇게 늙었는지, 언제 이렇게 고약하게 표정이 굳어졌는지 모르지. 거울 때문이야. 나이가 없는 거울 때문... 나의 소설/독서감상문 2016.07.07
원더풀 데이 2016년 <<작가연대>> 여름호에 실린 글을 옮겨본다. 원더풀 데이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성혜는 소파 깊숙이 엉덩이를 집어넣는다. 오전의 햇빛이 유리창을 뚫고 거실에 깔린다. 빛이 거실 맞은편 주방으로 길게 뻗는다. 하이그로시로 시공된 흰색의 싱크대가 빛을 튕겨낸다. 빛이 .. 나의 소설/발표한 글 2016.06.25
<토잉카와 두 개의 옆문> <목차> 사막여우에게, 페가수스에게 본드의 바람이, 독사의 열기가 마징가는 씩씩하게, 장미는 안타깝게 FO 작업으로, ACM 훈련으로 턱걸이를 하고, 나귀 가죽을 덮고 도서관에 클릭, 비행복에 클릭 메추리는 메추리로, 메추리를 베이비박스가, 구더기가 호수에게 말해, 시가 말해 거인.. 나의 소설/새로 출간한 책 2016.04.22
<토잉카와 두 개의 옆문>에 관한 뒷이야기 2014년 2월 5일. 취재 차 간 비행단은 한겨울보다 추웠다. 공군을 소재로 소설을 쓰겠다고 나서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공군본부에선 내가 취재해야 할 비행단에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고, 나는 행여 글을 쓰지 못할까 조바심이 났다. 왜 안 그럴까. 군대의 기억자도 모르는 내가,.. 나의 이야기 2016.04.22
잃어버린 연근 연근은 생긴 모양부터가 다른 채소와는 다르다. 연한 살색에다 구멍이 빵빵 뚫린 것이 꽤나 매력적이다. 헌데 지금까지 연근조림을 해본 게 서너 번 되나? 참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그보다 더 복잡한 음식은 잘하는 편인데, 예를 들어 잡채라든지, 녹두전은 쉽게 하는데 우엉조림이나 연근.. 나의 이야기 2016.04.03
그들의 신음 폴란드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소금광산이 있다. 이번 동유럽 5개국 관광 중 유독 관심을 끌었던 건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소금광산이다. 석탄이 아니라 소금으로 된 산이라니,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소금광산의 규모와 유래는 검색어만 치면 얼마든지 알 수 있.. 나의 이야기 2016.03.08
초짜들의 행진 작지만 큰 이야기를 시작한다. 운전경력 4년 차의 젊은 여자가 있다.(가칭 춘향이로 칭한다) 운전경력 4년 차의 나이든 여자가 있다.(가칭 보바리로 칭한다) 두 여자는 운전을 하다 접촉사고를 낸다. 가볍다면 가볍고 예민하다면 예민한 접촉사고다. 두 여자는 말없이 신경전을 벌인다. 이.. 나의 이야기 2016.02.13
우리는 여행을 했었지 다음 주엔 친구 둘과 동유럽 여행을 간다. 오랜만에 나서는 길, 설렘이 먼저 여행길을 잡는다. 어제는 친구들을 만나 브리핑 타임을 갖고 일정에 따른 여러 사항을 체크했다. 친구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문득 그때의 일이 어른댄다. 친구 J와 지리산 여행을 하던 때다. 나와 J는 일정이 .. 나의 이야기 2016.02.13
천천히 안기는 중 『천천히 안아주는 중』의 저자 박남희 철학자는 지성과 부드러움을 함께 지진 분이다. 본분 138쪽을 인용해서 말하면 ‘아름’ ‘다움’의 사람이다. “아름다움이란 ‘아름’과 ‘다움’의 합성어로, 저마다의 ‘아름’이 모여 같이 ‘다함’을 이루어가는 것을 뜻”한다. 171쪽의 말.. 나의 소설/독서감상문 2016.01.06
김장철이면 생각나는 어김없이 찾아온 김장철. 김장철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메신저는 우리 작은언니다. 작은언니는 예의 그렇듯, 11월만 되면 김장에 대해 입을 뗀다. 언제 할 거냐, 몇 포기 할 거냐, 마늘과 젓갈은 있냐, 내 스케줄이 있으니 미리 말해라, 등등 거의 졸라대듯이 한다. 나는 언니에게 김장을 해.. 나의 이야기 2015.11.09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철학자 이동용의 인터뷰 기사 펌글 철학아카데미 게시판을 훑다 이동용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됐다. "삼포세대 절망, 누구 탓도 해서 안돼"라는 부제에 끌려 클릭해봤다. 우리 삶의 고통을 쇼펜하우어로 풀어보고자 하는 말에 전적으로 긍정한다. 즉, 고통을 통해 긍정을 발견하자는 취지. 늘 내 속에서 외쳐대던 음성. .. 나의 이야기 2015.09.01
왜 아이히만인가 600만 명의 유럽 유대인들의 학살을 의미하는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살인을 저지른 독일 나치스. 그들 중 익히 이름이 알려진 사람 중에는 아이히만이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아이히만인가. 이러한 의문으로 읽게 된 책이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나의 소설/독서감상문 2015.08.07
악의 정체성 전체주의의 기원1 -한나 아렌트의 관심- 히틀러의 대량학살은 내게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많은 사람이, 그들 중엔 엘리트도 다수 있었을 터인데 어째서 히틀러라는 한 인간에 마취되었는지, 인간의 양심은 어디로 실종된 것인지 궁금했다. 마침 철학아카데미에서 ‘한나 아렌트와 근대.. 나의 소설/독서감상문 2015.07.14
먹방에 열광하는 이유 티브이를 켜면 경쟁이라도 하듯 요리하는 장면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요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부엌’ 혹은 ‘주방’에서 이루어진다. 먼저, ‘부엌’이 여자들만의 전유공간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은 아파트가 등장하면서다. 아파트가 생기자 ‘부엌’은 버려야 할 촌스러운 단어.. 나의 이야기 2015.07.10
다양성의 까칠함 우리는 흔히 ‘다름’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다양성을 받아들이자는 말이기도 하다. 헌데 현실은 그럴까?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건 나뿐인가? 소수자들의 정체성 차별, 인종차별의 무차별성, 그러한 거대 담론은 여차치고 우리는 가까이에서 ‘다름’에.. 나의 이야기 2015.06.29
언어의 숙명 혹은 변신 어느 지인은 내게 말했다. “나는 ‘절대로’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그 말은 한계를 정하기 때문에 여러 부분을 포용할 수 없어섭니다.” 또 다른 지인은 내게 말했다. “나는 ‘한계’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한계가 있다는 말은 앞으로 나아갈 길에 제한을 두기 때문입니다.” 나는 두 .. 나의 이야기 2015.06.26
조언인가 실언인가? 작가들은 책을 내면 독자의 반응에 예민해진다. 글에 대한 평가가 곧 자신에 대한 평가이니 왜 안 그럴까. 그런데 작가 입장에서 보자면 평가도 평가 나름이다. 특히 작가와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평가는 냉정한 의미에서 제대로 된 평가라기보다 예의에 속하는 립서비스 혹은 우.. 나의 이야기 2015.06.01
유쾌한 <<절망의 인문학>> 수많은 책이 있지만 훌륭한 책은 얼마나 될까. 오창은 교수의 『절망의 인문학』을 읽으며 번뜻 떠오른 생각이다. 이 책은 발로 뛰고 많은 사료를 정리한, 땀이 흠뻑 밴 몸이자 육성이다. 한마디로 훌륭하고 용감한 책이다. 현장에 관한 글을 쓰자면, 나오는 사람들과 단체를 의식하지 않.. 나의 소설/독서감상문 2015.05.18
시의 매력 시를 접하다 보면 시어에 놀랄 때가 많다. 좋은 선율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배트로 공을 탁 칠 때의 음 같기도 해서다. 소설이 내러티브의 언어라면 시는 내러티브를 압축한 언어다. 시인의 내면은 압축된 언어를 통해 곡선으로, 때론 점선으로, 어느 땐 굵은 직선으로 흘러나온다. 『그 흔.. 나의 소설/독서감상문 2015.05.07